나는 오래도록 사랑이 나를 안정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떠나지 않고, 계속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내 안의 불안도 조금은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사랑을 구원처럼 여긴 적이 많았다. 혼자서는 감당되지 않던 감정들도, 내 존재가 흔들리는 것 같은 두려움도, 누군가의 확실한 애정이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원했다.
아니, 원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사랑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사랑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수록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고, 상대가 내게 소중해질수록 잃을까 두려워졌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기쁨보다 긴장이 커졌고, 안정감보다 경계심이 앞섰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이 시작될 때마다 내 안에서는 거의 동시에 공포도 자라났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말과 표정과 침묵에 지나치게 민감해졌다. 답장이 언제 오는지, 평소와 말투가 다른지, 만날 때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헤어질 때 웃음이 조금 덜했는지 같은 것들이 내게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 내 안에서는 증거처럼 쌓였다.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쁨이기보다 불안의 시작이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확인받고 싶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인지 알고 싶었다.
조금 전의 다정함이 몇 시간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어제의 애정이 오늘까지 이어지는지,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마음이 식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거의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사랑은 늘 현재형이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이 느껴지면 나는 곧바로 불안에 잠식되었다. 누군가의 애정이 한번 확인되었다고 해서 안심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안심은 잠깐이었고, 곧 다시 의심과 두려움이 뒤따랐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확인을 원했고, 확인을 받아도 오래 믿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원한 것은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확신을 원했다.
조금 흔들려도 사라지지 않을 애정, 내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떠나지 않을 관계, 감정이 복잡한 날의 나를 보아도 포기하지 않을 사람을 원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은 바라는 만큼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확신을 원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나는 관계를 더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한 번은 누군가의 짧아진 답장 하나만으로도 하루 종일 마음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물으면 나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사람이 바쁠 수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특별한 의미 없이 짧게 답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짧아진 말투는 곧 거리감으로 느껴졌고, 거리감은 곧 거절처럼 다가왔으며, 거절은 오래된 두려움을 깨웠다. 나는 ‘별일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 ‘이제 나를 덜 좋아하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먼저 사로잡혔다.
사랑받고 싶을수록 왜 이렇게 불안해지는 걸까.
나는 그 질문을 수도 없이 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조심스러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누군가의 호의 하나에는 그렇게 크게 기뻐하면서도, 작은 거리감 하나에는 무너질 만큼 흔들리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도 나는 사랑을 감정으로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생존과 연결해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는 일은 단지 기분 좋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졌고, 버려지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처럼 다가왔으며, 때로는 내 존재 전체를 떠받쳐주는 확인처럼 작동했다. 그러니 그 사랑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면, 단순히 관계가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그 사람의 반응 속에서 내 가치를 확인하려는 쪽에 더 가까웠다. 물론 그때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너무 좋아해서, 너무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내 마음의 한쪽에서는 늘 이런 질문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사랑받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필요한 사람인가.
나는 버려지지 않을 사람인가.
이 질문들은 관계를 평온하게 두지 않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는 편안해지는 대신 더 많이 긴장했다. 상대를 믿고 기대기보다 먼저 상실을 상상했고, 지금의 다정함을 누리기보다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사로잡혔다. 사랑이 주는 기쁨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그 사랑이 깨질 때의 고통을 미리 살아내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자주 모순적인 행동을 했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너무 가까워지면 도망치고 싶었다.
상대가 나를 더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내 불안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애타게 바라면서도,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먼저 차갑게 굴거나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내가 먼저 마음을 닫아버리면 덜 아프지 않을까.
상대가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실망해버리면 덜 무너지지 않을까.
더 좋아지기 전에 내가 먼저 포기하면 적어도 버려졌다는 감각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방식은 나를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가장 바라던 관계를 더 쉽게 흔들리게 만들었다. 상대는 내가 원하는 만큼 확신을 주지 못했고, 나는 그 부족함을 견디지 못해 더 많은 신호를 읽어내려 했다. 때로는 서운함을 숨기지 못했고, 때로는 괜찮은 척하다가 한순간에 감정이 터져버렸다. 상대는 이유를 모른 채 당황했고, 나는 이해받지 못했다는 감각 속에서 더 크게 상처받았다. 그렇게 관계는 조금씩 피곤해졌고, 나는 또 한 번 “역시 나는 사랑을 오래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결론 내리곤 했다.
사실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상대의 부족함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내 안의 오래된 외로움이 함께 깨어나는 것이 더 힘들었다. 사랑은 따뜻한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결핍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경험이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관계를 갈망하는지, 얼마나 버려짐을 두려워하는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사랑은 자꾸만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사랑 앞에서 행복하면서도 부끄러웠고, 기쁘면서도 두려웠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상대의 반응에 흔들리는지, 왜 애정 표현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지, 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믿지 못하고 자꾸 시험하듯 불안해지는지 부끄러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원래 이렇게 고단한 것인지, 아니면 유독 나만 사랑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을 단순히 현재의 관계 안에서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눈앞의 사람은 그저 지금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한마디와 표정, 거리감과 다정함은 어느새 내 안의 더 오래된 감정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작은 흔들림 앞에서도, 현재 이상의 고통으로 반응하곤 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나를 버리려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내 안의 어떤 부분은 이미 오래전부터 버려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단순히 이별이 아니었다.
관계가 끝나는 사건 자체보다도, 그 끝이 내 존재의 가치와 연결될까 봐 두려웠다.
상대가 떠난다는 것은 내게 자주 이렇게 번역되었다.
역시 나는 끝까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역시 나는 쉽게 버려질 수 있는 사람이다.
역시 나를 가까이하면 결국 떠나게 된다.
그러니 사랑은 설렘만으로는 감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곧바로 두려움을 데리고 왔고, 애착은 거의 동시에 불안을 불러왔다. 나는 누군가를 깊이 좋아할수록 더 예민해졌고, 더 간절해졌으며, 더 상처받기 쉬워졌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간다는 것은 곧 그 사람에게 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닿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사랑 속에서 종종 두 개의 마음으로 살았다.
하나는 이 관계 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상처받기 전에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붙잡고 싶었고, 동시에 달아나고 싶었다. 기대하고 싶었고, 동시에 기대를 포기하고 싶었다. 믿고 싶었지만, 믿는 순간 더 크게 다칠 것 같았다. 이 모순은 관계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치게 했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나를 흔드는 경험이라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사랑 속에서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상대의 애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잠깐의 거리감에 존재 전체가 흔들리지 않으며, 불안을 곧바로 파국으로 번역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마음은 늘 너무 빨리 앞서갔고, 작은 변화에도 크게 반응했으며, 애정을 느낄수록 동시에 상실을 준비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사랑을 받을 때보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할 때 더 나 자신다워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불안은 내게 낯선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했다.
누군가가 다정할 때보다, 그 다정함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느낄 때 내 감각은 더 예민하게 깨어났다. 평온은 짧았고, 경계는 오래갔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순간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했다. 언젠가 깨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예감은 종종 스스로를 현실처럼 만들었다.
사랑받고 싶을수록 더 불안해졌던 이유는, 어쩌면 내가 사랑을 너무 크게 걸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관계 안에 위로도, 확신도, 안전도, 존재의 가치도 모두 걸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랑은 기쁨이면서 동시에 위기였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단지 한 사람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내 삶 전체를 붙들어줄 무언가를 찾는 일처럼 되어버리면 관계는 필연적으로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국 사랑을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나는 그저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깊이 마음을 쓰고 있다고 믿었다.
상대를 그만큼 진심으로 아끼기 때문에 더 쉽게 흔들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불안의 밑바닥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나는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열 때마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동시에 그 사람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입 밖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비슷한 절박함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사랑은 자꾸만 무거워졌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 하나에 너무 많은 의미가 실렸고, 관계의 작은 균열은 곧 내 존재 전체의 위기처럼 번졌다. 나는 자주 상대의 반응을 과도하게 읽어냈고, 그 해석 안에서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 안에 무엇이 그토록 불안한지를 명확히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것은 늘 상대였고, 문제는 늘 관계에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 관계를 그렇게 흔들리게 만드는 더 깊은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관계들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중 가장 아픈 진실 하나는 이것이었다.
사랑은 중요하지만, 사랑만으로는 내 불안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누군가의 애정이 내 상처를 잠시 달래줄 수는 있어도, 내 존재를 붙들어주는 유일한 기둥이 되어줄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상대에게 그 역할을 기대할수록, 나는 더 쉽게 실망하고 더 깊이 무너진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구원의 방식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깨달음은 아주 조금씩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필요로 했던 것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확인만이 아니라, 확인이 잠시 비어 있는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내면의 안전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받는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 사랑 하나에 내 삶 전체를 맡기지 않을 수 있는 힘 역시 필요했다.
그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해서 곧바로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사랑을 다르게 배우는 일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전히 관계 속에서 흔들렸고, 때로는 예전의 방식대로 불안해졌으며, 상처받기 전에 먼저 물러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상대의 반응만 보았다면, 이제는 그 반응이 내 안의 어디를 건드렸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질문은 내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사랑 앞에서 불안해지는가.
내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받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이 없으면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그 질문들에 답하려면, 나는 결국 사랑 그 자체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로 돌아가야 했다.
사랑받고 싶을수록 더 불안해졌던 마음의 뿌리는 지금 여기의 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 불안은 내 성격의 단순한 예민함이 아니었고, 의지로 고쳐질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온 어떤 감각,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 온전히 붙잡히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사랑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따뜻함을 원하면서도 따뜻함이 커질수록 경계했고, 가까움을 원하면서도 가까워질수록 불안정해졌다. 누군가를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 진심 안에는 늘 두려움이 깊게 섞여 있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나는 종종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의 내가 사랑을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두려운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대를 덜 좋아해서 흔들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무너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불안은 부끄러워해야 할 결함이라기보다, 오래 안전하지 못했던 마음이 관계 안에서 보여준 반응에 더 가까웠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누군가를 좋아할수록 점점 더 불안해지는 자신을 보며, 다시 한번 이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왜 나는 사랑이 시작될수록 더 외로워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