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괜찮은 척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by온기작가


돌이켜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괜찮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오래도록 괜찮은 사람처럼 살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믿었다. 내 안의 불안과 혼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진폭을 누군가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늘 어느 정도는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

겉으로 보면 나는 별문제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해냈고, 사람들 앞에서는 적당히 웃을 줄 알았고, 상황에 맞는 말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성실하고 바카라임감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또 어떤 순간에는 남의 감정에 민감한 사람처럼 읽히기도 했다. 그런 평가는 나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사람들이 보는 내가 ‘괜찮은 사람’일수록, 실제의 나는 더 말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는 사소한 일 하나가 오래 흔들림으로 남곤 했다. 누군가의 말투가 평소보다 조금 차갑게 느껴지면 그 하루가 무너졌다. 답장이 늦어지면 내가 밀려난 것 같았고, 별 뜻 없이 지나간 표정 하나에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런 내 반응이 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었다. 머리로는 “이 정도로 흔들릴 일은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이미 깊은 불안 속으로 떨어진 뒤였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는 두 개의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나는 지나치게 흔들리는 나였고, 다른 하나는 그런 나를 차갑게 비난하는 나였다. 나는 상처받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상처받는 방식조차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힘든 일 앞에서조차 위로보다 비난이 먼저 나왔다. 왜 이렇게 유난스러운지, 왜 남들은 넘길 일을 며칠씩 붙들고 있는지, 왜 감정을 적당한 크기로 느끼지 못하는지. 내게 가장 가혹한 사람은 종종 나 자신이었다.

문제는 내가 힘든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괴로움은 분명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었다. 슬픈 것도 같고, 억울한 것도 같고, 화가 나는 것도 같고, 텅 빈 것도 같았다. 어떤 날은 누군가를 너무 좋아해서 견딜 수 없었고, 또 어떤 날은 그 사람이 나를 떠날까 봐 먼저 밀어내고 싶었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지는 모순은 늘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 앞에서 가장 불안정해졌다.

그래서 나는 설명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이해받고 싶었지만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먼저 단정했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보다 스스로를 다그치는 방식에 더 익숙해졌다. 괜찮은 척, 덤덤한 척, 별일 아닌 척. 그 얇은 태도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점점 더 고립시키는 방식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감정을 숨긴 것이 아니라 감정에게 잠식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감정은 너무 커서 밖으로 꺼내는 순간 모든 것이 망가질 것처럼 느껴졌다. 서운함은 금세 분노로 번졌고, 외로움은 곧 절망처럼 다가왔으며, 불안은 늘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로 이어졌다. 감정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고, 언제나 더 큰 해석과 더 오래된 두려움을 불러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의 답장이 조금 늦는다. 처음에는 서운하다.

곧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게 된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관계 전체를 망치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두려움으로 번진다.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늘 더 컸다. 나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내 안에서 증폭되는 방식 때문에 더 쉽게 지치고 소진되었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야 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가 실망할 것 같았고, 예민한 사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피곤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웠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더 침착한 표정을 연습했고, 더 이해심 있는 태도를 취했고, 혼자서도 잘 버티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괜찮은 척하는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감정을 없는 척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인정받지 못한 감정은 더 뒤틀린 형태로 돌아왔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무너져 내렸고, 어떤 날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속수무바카라으로 휘청거렸다. 관계 안에서는 더 혼란스러웠다. 상대를 누구보다 원하면서도, 동시에 상처받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닫아버리고 싶었다. 기대와 불안, 애정과 분노, 의지와 회피가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소모적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자주 궁금했다.

왜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까.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상처를 받아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왜 나는 작은 일에도 오래 흔들리고, 누군가의 태도 하나에 내 존재 전체가 위태로워지는 걸까.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늘 자신을 탓했다. 내가 더 성숙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덜 예민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여겼으며, 내가 조금만 더 단단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먹는다고 쉽게 조절되지 않는 어떤 두려움과 결핍, 오래된 상처의 반응이 내 안에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명확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늘 현재의 사건만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일은 오래된 감정을 건드렸고,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른 채 매번 처음처럼 압도당했다.

괜찮은 척하는 습관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것은 성격이라기보다 생존 방식에 가까웠다. 나는 무너지는 마음을 드러내면 정말로 버려질 것 같았고, 내 불안이 너무 과해서 누군가를 질리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더 침착한 척했고, 더 이해심 많은 척했고,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인 척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버티면 버틸수록 외로움은 더 깊어졌다. 누구도 진짜 나를 모른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가 먼저 진짜 나를 숨기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깊이 이해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받지 못했을 때 입을 상처가 더 두려웠다. 그래서 다가가고 싶다가도 물러났고, 기대하다가도 단념했으며, 간절히 바라다가도 애초에 기대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접곤 했다. 그 안에서 감정은 점점 더 극단적으로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괜찮은 척을 하면서도 사실은 누군가 나의 균열을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괜찮지 않다는 말을 먼저 꺼낼 수 없어서 침묵 속에 머물렀던 것이다. 누군가 조금 더 세심하게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누가 다가오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내게 늘 약함을 고백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 약함은 곧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 마음을 오해했다.

내가 단지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관계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 안의 과도한 반응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오래도록 나를 미워했다.

이해하기 전에 고치려 했고, 달래기 전에 통제하려 했으며, 흔들리는 자신을 먼저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통제만으로는 버텨지지 않는다. 특히 오래 외롭고 불안했던 마음은 더 그렇다. 그런 마음은 교정되기보다 먼저 이해받아야 하고, 판단되기보다 먼저 안전해져야 한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래서 더 열심히 괜찮은 척했다.

어쩌면 내 삶의 많은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힘들다는 사실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던 데서. 무너졌다는 사실보다, 무너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데서. 나는 아픈 사람이고 싶지 않았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외면한다고 해서 마음의 상처가 없는 일이 되지는 않았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은 채 더 깊은 곳에서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래 괜찮은 척해왔는지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인정은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 순간에 가까웠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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