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나 상담사가 되었습니다.

by온기작가

-프롤로그-

진단명 너머의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바카라을 쓰기로 마음먹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쉽게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를 한 줄의 고백으로 정리하고 싶지 않았고, 상처를 자극적인 이야기로 내놓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오랫동안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말이 내 삶 전체를 설명해버리는 경험을 해왔다. 그래서 이 바카라만큼은 진단명보다 먼저, 그 이름 아래에서 흔들리고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던 한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때 내 마음에는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이름은 어떤 면에서는 설명이 되었다. 왜 나는 사랑받고 싶을수록 더 불안해졌는지, 왜 관계 안에서 쉽게 무너졌는지, 왜 감정이 한 번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는지, 왜 상대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동시에 밀어내고 싶었는지. 그 이름은 내 삶의 일부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름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진단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설명되기 전에 이미 규정된 사람, 이해받기 전에 먼저 경계의 대상이 되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진단은 때로 도움이 되었지만, 그보다 먼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다가온 적도 많았다.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두려웠고, 그 말이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지워버릴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오랫동안 침묵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과거를 다시 통과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흔적을 드러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완벽하게 회복한 사람도 아니고,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도 아니다. 지금도 나는 나를 배우는 중이고, 때로는 여전히 마음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흔적을 부끄러움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무너뜨린 시간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이 바카라은 완치의 기록이 아니다.

나아졌다는 선언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회복의 정답을 제시하려는 바카라도 아니다. 이 바카라은 오히려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돌아가야 했는지, 자신을 미워하는 데 익숙했던 사람이 어떻게 조금씩 자기 편이 되어갔는지, 관계의 상처 속에서 흔들리던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듣는 사람이 되어갔는지를 조심스럽게 기록한 바카라에 가깝다.

나는 상처가 있는 사람이 상담사가 되어도 되는가를 오래 고민했다.

내 안의 불안과 취약성을 알수록,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 자리에 선다는 것이 때로는 두렵기도 했다. 상처를 지나온 경험이 과연 약점일지, 아니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하고, 상담을 경험하고, 나 자신을 다시 해석하는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상처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고 있는가에 더 가깝다는 것을. 좋은 상담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바카라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한때 감정에 휩쓸리고 관계 앞에서 쉽게 무너지던 사람이, 이제는 왜 그런 일이 반복되었는지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자리. 진단명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이, 이제는 그 이름 너머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 자리.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보다 그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자 하는 자리에서 이 바카라은 쓰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바카라에서 나를 미화하고 싶지 않다.

고통을 특별한 서사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가능한 한 정직하게 쓰고 싶다. 왜 작은 일에도 무너졌는지, 왜 사랑이 필요할수록 더 두려웠는지, 왜 괜찮은 척하는 데 এত 익숙해졌는지, 왜 진단을 설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낙인으로 먼저 느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며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다시 배우게 되었는지 차분히 돌아보려 한다.

혹시 이 바카라을 읽는 누군가가 지금 자신의 감정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면, 관계 속에서 반복해서 무너지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면, 혹은 어떤 진단명 때문에 삶 전체가 규정된 것처럼 느끼고 있다면, 나는 이 말을 먼저 건네고 싶다.

당신은 병명이 아니다.

당신은 고쳐져야 할 실패작도 아니다.

당신은 다만 오래 이해받지 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일 수 있다.

이 바카라은 그 사실을 나 자신에게 다시 말해주기 위해, 그리고 비슷한 시간 속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건네기 위해 쓰였다.

진단명 너머에도 한 사람의 삶이 있다는 것,

상처를 이해하는 일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너짐의 시간을 지나서도 삶은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바카라을 통해 말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