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너무 크면,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든 없애려 한다.
나의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샀다.
옷을 샀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손에 쥐었다.
손에 쥐고 나면 잠깐은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잠깐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해를 했다.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마음이 너무 커서, 다른 감각으로 덮으려 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다른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 시절 내 손목에는 흔적이 생겼다.
나는 시계로 가렸다.
여름에도. 반팔을 입어도 시계는 항상 찼다.
누가 볼까 봐서가 아니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시계를 벗은 채로 그 손목을 바라봤다.
이게 맞나.
그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충동이 올라올 때 "이게 맞나"를 물어본 것이.
늘 그냥 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였다.
그런데 그날은 딱 한 번 물었다.
이게 맞나.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틀렸다는 확신도 그 순간엔 없었다.
다만 질문이 생겼다.
그것만으로 달랐다.
충동은 질문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냥 온다.
감정이 커지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나중에야 "왜 그랬지"를 묻게 된다.
그 순간엔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멈춤은 그 틈을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엔 아주 작은 틈이었다.
"이게 맞나"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몸보다 조금 앞서는 것.
항상 성공한 건 아니었다.
충동이 질문보다 빠른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한 번 물어봤다는 것이 남았다.
다음번엔 조금 더 일찍 물을 수 있었다.
충동구매는 지금도 종종 온다.
감정이 흔들릴 때, 뭔가를 손에 쥐고 싶어지는 그 감각은 여전히 있다.
완전히 사라진 척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제는 그 충동이 올라올 때 조금 더 빨리 안다.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 마음이 힘든 거구나.
알아챈다고 항상 멈춰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먼저 나를 보는 것.
그것이 달랐다.
지금은 내가 소중하다.
이 말이 가능해진 것은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었다.
시계로 손목을 가리면서 "이게 맞나"를 물었던 날부터, 조금씩이었다.
그 질문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나는 고통을 없애고 싶었던 것이지, 나를 없애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차이를 아는 데 오래 걸렸다.
시계로 가렸던 그 손목도,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사던 그 손도.
그것이 살아남으려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틀린 방식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밖에 몰랐다.
멈춤을 배운다는 것은 그때의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지킬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