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물을 엎질렀다.
그냥 물이었다.
컵이 기울었고, 물이 쏟아졌고, 식탁이 젖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왜 또 그러는 거야.
매번 왜 이래.
목소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다.
멈춰지지 않았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그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밥을 안 먹고 장난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숟가락으로 국을 젓고, 반찬을 가지고 놀고, 밥을 먹지 않았다.
그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든 아이 옆에서 울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자고 있는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혼자 사과했다.
혼자 울었다.
그 사이클이 반복됐다.
낮에 화내고, 밤에 울고, 아침이 되면 또 하루가 시작됐다.
그 시절 나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감정이 없는 사람이야.
느끼는 게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믿으려 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화가 나지 않을것 같았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울어도 눈물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감각하다고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세뇌였다.
지금 생각하면 안다.
감정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올라오고 내려갔다.
그 감정을 감당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없는 것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없애버리면 견디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감정은 없어지지 않았다.
억누를수록 다른 방향으로 터졌다.
아이가 물을 엎지르는 순간, 밥을 안 먹는 순간, 그 작은 틈으로 빠져나왔다.
억눌러둔 것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나도 몰랐다.
화가 이렇게까지 클 줄.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쁜 감정만 있는 건 아닐지도.
화도 감정이고.
짜증도 감정이고.
지침도 감정이었다.
그것들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신호였다.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달리 해보려 했다.
없애려 하지 않고, 그냥 느껴보기로.
아이가 또 무언가를 엎질렀다.
화가 올라왔다.
이번엔 그 화를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없애려 하지도 않았다.
화가 나는구나.
지금 화가 많이 나는구나.
그것만 확인했다.
그리고 반응하지 않으려 했다.
한 박자.
딱 한 박자만.
소리가 목까지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 뱉지 않았다.
그 한 박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간,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것뿐이었다.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화는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화가 나를 움직이지 않았다.
화가 오는 것과, 화대로 행동하는 것은 달랐다.
그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있었다.
그 틈을 발견하는 데 오래 걸렸다.
견딘다는 것은 감정을 꾹 참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이 와도 괜찮다고, 그냥 느껴도 된다고, 그리고 그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을 조금씩 배워가는 일이었다.
지금도 잘 되지 않는 날이 있다.
화가 먼저 나오고, 뒤늦게 후회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화가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감정이 온다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견딘다는 것은, 그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