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법을 배우다

by온기작가

아이가 물을 엎질렀다.

그냥 물이었다.

컵이 기울었고, 물이 쏟아졌고, 식탁이 젖었다.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왜 또 그러는 거야.

매번 왜 이래.

목소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다.

멈춰지지 않았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봤다.

그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밥을 안 먹고 장난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숟가락으로 국을 젓고, 반찬을 가지고 놀고, 밥을 먹지 않았다.

그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든 아이 옆에서 울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자고 있는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혼자 사과했다.

혼자 울었다.

그 사이클이 반복됐다.

낮에 화내고, 밤에 울고, 아침이 되면 또 하루가 시작됐다.

그 시절 나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감정이 없는 사람이야.

느끼는 게 없는 사람이야.

그렇게 믿으려 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화가 나지 않을것 같았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울어도 눈물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무감각하다고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세뇌였다.

지금 생각하면 안다.

감정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올라오고 내려갔다.

그 감정을 감당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없는 것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없애버리면 견디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감정은 없어지지 않았다.

억누를수록 다른 방향으로 터졌다.

아이가 물을 엎지르는 순간, 밥을 안 먹는 순간, 그 작은 틈으로 빠져나왔다.

억눌러둔 것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나도 몰랐다.

화가 이렇게까지 클 줄.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쁜 감정만 있는 건 아닐지도.

화도 감정이고.

짜증도 감정이고.

지침도 감정이었다.

그것들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지금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신호였다.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달리 해보려 했다.

없애려 하지 않고, 그냥 느껴보기로.


아이가 또 무언가를 엎질렀다.

화가 올라왔다.

이번엔 그 화를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없애려 하지도 않았다.

화가 나는구나.

지금 화가 많이 나는구나.

그것만 확인했다.

그리고 반응하지 않으려 했다.

한 박자.

딱 한 박자만.

소리가 목까지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 뱉지 않았다.

그 한 박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간,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것뿐이었다.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었다.

화는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화가 나를 움직이지 않았다.

화가 오는 것과, 화대로 행동하는 것은 달랐다.

그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 있었다.

그 틈을 발견하는 데 오래 걸렸다.


견딘다는 것은 감정을 꾹 참는 것이 아니었다.

감정이 와도 괜찮다고, 그냥 느껴도 된다고, 그리고 그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것을 조금씩 배워가는 일이었다.

지금도 잘 되지 않는 날이 있다.

화가 먼저 나오고, 뒤늦게 후회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는 그 화가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감정이 온다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견딘다는 것은, 그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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