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를 할 때 늘 긴장해 있었다.
연락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쪽은 오히려 무덤덤한 편이었다.
그런데 만나는 자리에서는 달랐다.
무엇을 보여줄지, 무엇을 숨길지.
어떤 말을 해야 좋아 보일지.
어떻게 웃어야 자연스러워 보일지.
밥을 먹는 것도 긴장됐다.
먹는 모습 하나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 사람 앞에서 내가 밥을 먹는다는 것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몰랐다.
상대방은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사랑한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속으로는 늘 같은 질문이 남았다.
사랑이 뭐지. 이게 사랑인가.
말은 들리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온기가 전달되지 않았다.
무언가 유리 너머로 받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이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표현하지 않아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문제는 사랑의 양이 아니었다.
나는 사랑을 원했던 게 아니었다.
안전감을 원했던 것이다.
이 사람이 나의 밑바닥을 보고도, 가장 볼품없는 순간을 보고도, 그래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나는 그 말 위에 설 수가 없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 위에는, 아무것도 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완벽한 모습만 보여줬다.
밑바닥을 보이지 않으면, 떠날 이유를 주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남편을 만났을 때는 달랐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계산하지 않고 있었다.
개그 드립을 마구 쳤다.
오락가락하는 내 모습을 그냥 보여줬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을 때 했다.
마음 어딘가에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싫어할 테면 싫어해라.
어떻게 보면 체념이었다.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내가 나를 놓아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을 예뻐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는데도 곁에 있는 사람.
밑바닥을 내밀었는데 받아준 사람.
처음으로 유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온기가 직접 닿았다.
그것이 안전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이 모습이어도 괜찮다는 느낌.
오늘 볼품없어도 내일도 여기 있을 거라는 느낌.
나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예고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사랑보다 먼저 안전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을 받아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남편이 아빠와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말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몸은 먼저 알았던 것 같다.
이 사람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밥을 먹어도 괜찮다는 것을.
웃기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전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다는 느낌.
그것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그게 사랑인지도 몰랐다.
그냥 이상하게 편했다.
그 편함이, 내가 평생 찾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