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외로움은 왜 분노의 얼굴로 나타났을까

by온기작가

어릴 때, 나는 울면 안 되는 아이였다.

정확히는,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배운 아이였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대신 화를 냈다.

화를 내면 적어도 무언가가 반응했다.

공간이 흔들렸다.

누군가 나를 바라봤다.

외면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정확히 느끼게 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외로움을 느꼈을 때,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섭섭했다.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느꼈다.

친구가 연락을 늦게 답했을 때. 누군가 내가 기대했던 말을 해주지 않았을 때. 함께 있는데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외로움 대신 분노를 느꼈다.

분노는 외로움보다 다루기가 쉬웠다.

외로움은 내가 부족하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처럼. 그 감각을 직면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분노는 달랐다. 분노는 상대방에게 향했다.

잘못은 저쪽에 있었다.

나는 피해자였다.

그 자리가 외로움의 자리보다 견디기가 조금 더 쉬웠다.

어느 날 나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그냥 해야 하는 것들을 했다.

밥을 짓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봤다.

끝날 무렵 나는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그것뿐이었다.

그 말은 오지 않았다.

아무도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 무심함 앞에서 조금씩 무너졌다.

서운함이 먼저 왔다.

그다음에는 말이 없어졌다.

그다음에는 혼자라는 느낌이 왔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느낌, 이 공간 안에서 나만 없는 것 같은 느낌.

어느 날의 예배 시간이었다.

코로나 시기로 집에서 보통의 날들과 같이 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찬송이 흘렀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서럽게 울었다.

아이는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다.

왜 우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서러운지.

조금 지나서야 알았다.

나는 지금 외로웠던 것이다.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를 봐줬으면 했던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줬으면 했던 것이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분노가 오지 않았다.

화가 날 수도 있었다.

서운함이 쌓이면 늘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외롭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더 이상 화낼 대상이 없어졌다.

이것을 알고 나서, 관계 안의 많은 장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갑자기 화가 났던 날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그 분노들. 지금 돌아보면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지금 네가 그립다는 말이었다.

나를 더 봐줬으면 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 혼자인 것 같아서 무섭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할 줄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말을 해도 된다는 것을 몰랐다.

외롭다고 말하는 것은 약한 것이라고 느꼈다.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짐이 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대신 화를 냈다.

그리고 상대방은 이유를 몰랐고, 나는 이해받지 못했고, 더 외로워졌다.

분노가 외로움을 해결하려 했지만, 분노는 늘 외로움을 더 깊게 만들었다.

분노는 외로움이 보내는 다른 이름의 신호였다.

그것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이유를 모르는 화가 올라올 때 묻는다.

지금 화가 나기 전에, 무엇이 있었나.

누군가 그리웠나. 연결되고 싶었는데 연결되지 못했나.

혼자라는 느낌이 먼저 왔나.

언제나 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이미 화가 다 올라온 뒤에야 깨닫는 날도 여전히 있다.

그래도 그날 예배당에서, 아이를 안고 서럽게 울었던 그 시간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

외로움을 외로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분노는 할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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