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낙인 앞에서

by온기작가


진단명을 받은 뒤, 나는 스스로를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불러왔다.

누가 그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던 것 같았다.

진단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진단이 그것을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한 것에 가까웠다.

경계선 성격장애. 그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글들이 있었다. 다루기 힘들다. 관계에서 문제가 많다. 주변 사람들이 지친다. 나는 그 말들을 읽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보다, 역시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더 먼저 왔다. 그것이 이상했다. 왜 나는 저항하지 않았을까.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진단이 오기 전에도, 나는 스스로를 힘든 사람, 버거운 사람, 뭔가 잘못된 사람이라고 느껴왔다는 것을.

진단은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도록 혼자 가지고 있던 생각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여준 것이었다.

그래서 낙인은 진단보다 먼저였다.

낙인이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감정이 진짜인 걸까, 아니면 경계선 성격장애라서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슬프다고 느끼면서도, 그게 진짜 슬픔인지 아닌지를 검열했다. 화가 난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또 과한 건 아닌지를 먼저 점검했다.

감정을 느끼는 것보다 감정을 의심하는 일이 먼저가 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물었다. 지금 어떤 느낌이에요? 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이게 진짜인지 모르겠어요.

경계선 성격장애라서 과민한 건지, 아니면 진짜로 이게 아픈 건지.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둘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본인의 감정을 믿을 수 없다고 배운 거예요."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나는 내 감정을 믿지 못하는 법을 배워온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내 감정을 믿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배워온 것이었다.

진단명은 그 오래된 배움을 다시 강화했다. 이름이 붙었으니까, 나는 더 의심해야 한다고.

낙인은 타인이 붙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가 나에게 붙이는 것이 더 깊었다.

타인의 시선은 피할 수 있어도, 내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나는 나를 향해 물었다.

너 또 그러는 거 아니야? 또 과한 거 아니야? 그 검열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좁아졌다.

낙인과 진단은 달랐다.

진단은 내 패턴을 설명하는 언어였다.

낙인은 내가 그 언어를 무기로 삼아 나를 찌르는 방식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진단을 받아들이는 것과,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작가의 이전글10장. 나는 병명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