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 병명과 나를 동일시했다.
진단명을 받은 이후 한참 동안, 나는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내가 무언가에 과하게 반응하면, 경계선 성격장애니까. 관계 안에서 흔들리면, 경계선 성격장애니까.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경계선 성격장애니까. 진단명은 설명이 되어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나 전체를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수치심은 그 이름과 함께 더 깊어졌다.
경계선 성격장애인 내가 부끄러웠다. 그 이름이 붙은 사람이 나라는 것이 불편했다. 누군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웠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어떻게 볼까가 걱정되었다. 나는 그 이름을 최대한 안쪽에 숨겨두려 했다. 내가 그것이라는 사실을 잊으려 했다. 그런데 잊히지 않았다. 이름은 한번 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그 이름과 싸웠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싸우는 대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경계선 성격장애가 무엇인지를, 그것이 왜 생기는지를, 어떤 사람들이 그 진단을 받는지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이것은 타고난 결함이 아니라는 것. 대부분 오래된 상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 굳어진 것에 가깝다는 것.
그 말들이 처음에는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나빠서가 아니라고. 그 말을 한 번 하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치심이 올라올 때마다, 병명이 나를 규정하려 할 때마다, 다시 그 말을 꺼내야 했다. 이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여러 번, 오랫동안,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병명과 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내가 가진 특징들을 설명해주는 말이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씩 실감되기 시작했다.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이기 이전에, 오래 혼자 많은 것을 감당해온 사람이었다. 말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 안에서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였다.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너무 일찍 배운 사람이었다.
병명은 그 모든 것의 결과였다. 원인이 아니라.
그리고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경계선 성격장애의 특징들이 내게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감정이 크게 흔들릴 때가 있었고, 관계 안에서 두려워질 때가 있었으며, 버려질까 봐 불안해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이것은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힘든 시간을 버텨온 흔적이라고. 쉽지 않은 환경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의 자국이라고.
흔적은 결함이 아니다.
살아온 증거다.
나는 병명이 아니었다. 나는 오래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안고도 여기까지 온 사람이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내 마음에 이름이 붙었지만, 그 이름이 붙기 전에도 나는 계속 살아왔다. 설명되지 않는 혼란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그래도 하루씩 버텨왔다.
그것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병이 아니라, 상처라고.
결함이 아니라, 흔적이라고.
나를 규정하는 이름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길의 일부라고.
그 전환이 하루아침에 온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말해준 끝에, 조금씩 조금씩 쌓인 것이었다. 이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그저 오래 혼자였던 사람이라고. 그 말들이 쌓여서, 어느 날 조용히 무언가가 바뀌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특징들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을 볼 때,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오래 많은 것을 감당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병명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일 뿐, 나라는 사람 전체가 아니라고.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나는 상처 입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나는 그냥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