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서였다.
공황이 처음 왔을 때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으며, 아무 이유 없이 지금 죽을 것 같다는 감각이 몸 전체를 덮쳤다. 처음에는 한두 번이었다. 그런데 점점 잦아졌다. 우울함은 더 이상 기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버거웠고, 하루를 버티는 데 이유가 필요했다. 불안은 이미 오래된 것이었지만, 그 시절의 불안은 달랐다. 숨을 쉬어도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한 알이 두 알이 되었고, 두 알이 여러 알이 되었다. 그것들이 없으면 하루를 지나기 어려웠다. 나는 그 사실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실감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실에서 선생님께 물었다.
저의 진단명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왜 그 질문을 했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답을 알고 싶었다기보다, 이 혼란에 이름이라도 붙여지면 조금은 버티기 쉬울 것 같았던 것 같다. 왜 이렇게 혼란스럽고 아프기만 한지, 왜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 질문들이 오래 쌓여 있었다.
선생님이 잠시 있다가 말씀하셨다.
경계선 성격장애에 가깝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시원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체념이 먼저였다. 충격이나 분노보다 오히려 오래된 피로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무언가를 마침내 인정하게 된 것처럼.
돌이켜보면 그 체념에는 이미 긴 역사가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가 어딘가 다르다고 느꼈다. 관계 안에서 남들보다 더 쉽게 무너졌고, 감정이 한 번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사랑받고 싶을수록 더 불안해지는 모순 안에서 살았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겼으며,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았다. 노력은 했지만 패턴은 반복되었고, 관계는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렸으며, 나는 매번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감정으로 무너졌다.
경계선 성격장애.
그 말은 낯설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었고, 공부하면서 스쳐간 개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을 때, 알고 있던 것과 실제로 듣는 것은 달랐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단순히 설명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 전체에 이름이 붙는 일처럼 느껴졌다.
진료실을 나오며 나는 한동안 멍하게 걸었다.
슬프다기보다는 묘하게 고요했다. 오래 쫓기던 무언가를 내려놓은 것 같기도 했고, 오래 숨겨온 무언가가 드디어 드러난 것 같기도 했다. 그 감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다만 그날의 하늘이 어땠는지, 거리가 어떻게 보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 안에서만 무언가가 조용히 정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 질문에 금방 답이 오지는 않았다. 진단은 설명이 되어주었지만, 그다음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 말이 이제 내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직 몰랐다.
한 가지만 분명했다.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내 마음에 이름이 붙었다.
그동안 나는 이름도 없이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설명되지 않는 혼란 속에서, 왜 이렇게까지 힘든지 이유도 모른 채, 그저 내가 부족하거나 예민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며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그 시간이 아깝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그냥 오래 걸렸구나 하는 마음이 컸다.
오래 걸렸지만, 지금이라도 왔다.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름 없는 혼란보다, 이름 있는 두려움이 조금은 다루기 쉬울 수 있다고, 그때의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