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참여 노인들을 위한 문화 체험 행사로 영화 <인턴>을 관람하고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통 놀이 선생님들, 9월 18일에 문화 체험 행사로 영화 관람 있는데 모두 참석하시지요?"
"어머, 우리 '오디세이' 보러 가나요?"
노인복지관 슬롯복지사님 말씀에 우린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요즘 영화 이야기에는 '오디세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들도 며느리와 얼마 전에 '오디세이'를 관람하고 우리 부부에게도 꼭 보라고 추천한 영화였다. 영화 보러 가야지 하면서도 왜 그리 바쁜지 아직 영화관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 영화 보러 간다는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선생님들, '오디세이'는 상영 시간이 세 시간이나 되고, 자막으로 봐야 해서 어르신들이 보시기에는 어려워서요. 이번에 단체로 볼 영화는 '인턴'입니다.
나는 올해 노인 일자리로 초등학교에 전통 놀이를 지도하러 다닌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노인복지관에서 나처럼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이 600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9월에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위한 문화 체험 행사로 단체로 영화 관람하고 뷔페식당에서 식사하는 행사를 마련해 주었다. 노인복지관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다.
이번 행사는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600여 명 중 희망자만 참여하는 행사로 이틀에 걸쳐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진행하였다. 우리 팀은 9월 18일에 문화 체험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전에는 전통 놀이 수업이 있어서 점심 식사 후 13시 2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관람하였다.
실버 인턴에 합격한 기호
마침 우리가 영화 관람하는 날이 옆 동네 신도시에 영화관(롯데시네마)이 새로 오픈하는 첫날이었다. 오픈 기념으로 팝콘을 무료로 나눠주어 팝콘과 생수 한 병씩 받아서 상영관인 3관으로 갔다. 요즘 대부분의 영화관이 리클라이너관이다. 의자를 올려 다리를 뻗고 앉아서 팝콘을 먹었다. 마치 침대에 누워서 영화 관람하는 것처럼 편했다. 3관은 노인복지관에서 통째로 대여해서 모두 우리 노인복지관 소속 노인들이다 보니 영화 보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단체로 영화 관람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이후 50년 만이다.
영화 <인턴>은 2015년에 개봉해서 흥행했던 할리우드 영화 <인턴>을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 내용을 몰라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 <82년생 김지영 >(2019), <만약에 우리>(2025)를 연출한 김도영 감독 작품으로 최민식 배우와 한소희 배우가 주인공이다. 9월 16일에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였는데 요즘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은퇴 후 홀로 지내던 기호(최민식 분)가 패션 스타트업 우투투(WOO22)의 실버 인턴으로 새로운 온라인 게임 생활을 시작하고, 젊은 CEO 선우(한소희 분)와 서로 다른 세대와 직급을 넘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중심이다. 우투투는 3년 만에 100억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 일벌레 선우가 있었다.
영화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은 극 중 주인공인 기호가 1959년생으로 나와 동갑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2022년에 퇴직했기에 성별은 다르지만, 주인공과 나이가 같기에 나와 동일시하며 관람하게 되어 더 몰입하게 되었다.
기호는 지도를 제작하는 출판사에서 37년간 근무하고 은퇴하였다. 카페에서 보게 된 잡지 뒷면에서 패션 회사 우투투의 실버 인턴 채용 소식을 접하게 된다. 기호는 일하고 싶은 마음에 철저하게 면접을 준비한다. 부대표 ‘영환’(김준한 분)과의 면접에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묻는 질문에 “강점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고, 약점은 나이도 많다는 것입니다”라고 재치 있게 받아친 기호는 패션 스타트업 우투투의 인턴 사원증을 손에 쥐게 된다. 기호가 실버 인턴에 합격하는 장면에서 영화관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이 기호의 합격을 축하하는 손뼉을 친 거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서른한 살의 나이 차이에도
기호는 출근 전에 조용히 커피를 내려 마시고 정확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아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하나뿐인 딸은 미국에서 살고 있어 늘 외로웠을 것이다. 혼자 살아도 집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는 남자로 보인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먼저 떠난 아내 사진을 보며 "다녀올게."라고 인사하는 장면에서는 같은 시니어로 코끝이 찡해졌다. 대표의 편한 복장을 해도 된다는 말에도 늘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모습에서는 기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실버 인턴은 선우의 동업자이자 선배인 영환(김준환 분)이 세제 혜택을 받으려고 3개월 단기 채용한 거였다. 기호는 대표인 선우 직속으로 배정되었다. 처음에는 선우도 나이 많은 기호가 부담스러웠다. 회사 안에서는 디지털 세대답게 메신저로 소통하는데 기호는 자기에게 떨어질 일을 기다리는데 좀처럼 일을 주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일을 찾아서 회사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아날로그 세대인 기호는 젊은 직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신조어까지 익히는데 어색한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운전기사의 낮술로 기호는 자연스럽게 선우의 운전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러시아워에 강북에서 강남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 기호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이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지름길로 선우를 안내하며 약속 시간 안에 도착한다. 37년 동안 지도 제작업에 종사해 온 실무자의 경험적 지식을 발휘한 거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는 잠자지 못한다던 선우는 코를 골며 자게 된다. 기호가 편해진 거다.
"잠이 보약입니다."
시간에 쫓기며 불안감과 압박감 속에 사는 선우에게 기호가 건넨 소박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이다. 이렇게 선우와 기호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우투투 건물이 예전에 기호가 근무했던 출판사 건물이었다는 우연은 일부러 꿰어 맞춘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영화니까. 이해했다.
선우는 전문 디자이너로 경영까지 겸하고 있는데 동업자인 선배 영환이 전문 CEO를 영입하자는 강력한 제안에 흔들리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외에도 디자인 유출 등 신경 쓸 일이 정말 많았다. 거기다 교수 임용을 준비하는 남편의 북토크에 가지 못하고 아이를 갖는 문제 등으로 남편과의 갈등도 선우를 힘들게 했다. 늦게까지 남아서 힘들어하는 선우를 기호는 물류 창고 방으로 이끈다. 그곳은 예전에 출판사 보일러실로 사용했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달과 남산 타워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영화에서 기호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젊은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야근하는 선우에게 피자를 건네고 옆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해 준다. 즉 이 영화는 세대 간의 '충돌'이 아닌 '융합과 경청'을 보여준다.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영화 속 기호가 그렇다.
기호는 일본 출장을 가는 선우와 동행하게 된다. 나는 영화의 모든 장면 중에 도쿄의 선술집에서 선우에게 아빠처럼 호통이라도 치는 것처럼 말해주는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선우는 회사 전문 경영인 영입 문제와 남편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한다. 심지어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일을 기호도 선우도 알고 있었다. 갑자기 기호가 큰 소리로 선우에게 호통을 친다.
"너는 젊고 유능하다.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네가 무너지려고 해. 잘못한 것은 그 새끼들인데."
그동안 나이는 어리지만, 대표인 선우를 존중해 주며 높임말을 사용했고, 온화한 성품의 기호였는데 반말로 조언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놀랐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막혔던 속까지 뻥 뚫리게 해 주었다. 선우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 소리 내어 울 수 있었다. 곧 기호는 정중하게 덧붙여 말하며 놀란 관객들에게도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제가 아버지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가족이 함께 관람해도 좋은 영화
귀국 후에 자신감을 얻은 선우는 중심을 잡고 동업자인 영환과 헤어지고 남편과도 이혼하며 커리어우먼으로 집중하게 된다. 3개월 실버 인턴을 마친 기호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함께 관람한 전통 놀이 선생님들께 영화가 어땠는지 여쭈어보았다.
"저는 영화가 조금 밋밋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좋았어요. 오히려 잔잔한 스토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어요."
사람마다 영화를 본 후에 느낌은 다를 것이다. 나는 후자처럼 큰 반전은 없었지만, 서른한 살의 나이 차이에도 소통할 수 있는 따뜻함이 좋았다. 또한 최민식 배우가 그동안 <파묘>나 <맨 끝줄 소년>에서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여유 있는 '좋은 어른'의 이미지도 마음에 들었다. 경력 37년의 노련함과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와 상대를 배려하는 품격은 기존의 묵직한 이미지와 또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처음(인턴)을 살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어야 할 시대를 살고 있다. <인턴>은 12세 이상 관람가로 세대 간의 소통과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가족이 편안하게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다.
기호가 3개월의 실버 인턴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공원 벤치에서 바카라을 읽는 마지막 장면이 참 편안하게 다가왔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인턴>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추석, 설날 등 명절에 연례행사처럼 영화를 보러 갔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시간이 된다면 따뜻한 휴먼 드라마 한 편 보시며 어른들은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을 들여다보고, 청년 세대는 은퇴한 노인들의 고민과 삶을 들여다보며 갈등이 아닌 화합의 장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