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서울 '번개모임', 가족나들이로 제격인 곳
"9월 16일에 전통놀이 수업 없어서 시간 되는데 우리 번개 모임 할까요?"
지난주에 내가 모임 단체방에 올린 글이다. 모임 단체방에는 네 명뿐인데 갑자기 '카톡! 카톡!' 불난 것처럼 시끄러웠다. 만날 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의논하고 밥 먹을 곳을 잡는 등 한참 동안 눈과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오래전에 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하며 마음이 맞아서 만든 모임인데 거의 20년 된 모임이다. 나이도 위아래로 한두 살 정도 차이라서 그냥 친구 같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기 싫은 정다운 모임이라 모두 퇴직한 지금까지 모임이 이어졌다. 이번처럼 갑자기 번개 모임을 제안해도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닌데 만날 방법을 찾아 얼굴 보여주는 좋은 분들이다. 나는 인천에, 한 명은 경기도에, 맏언니는 퇴직하고 충북에, 한 명만 서울에 산다. 사는 곳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다.
충북에서 올라오는 분이 시외버스로 남부터미널로 오시기에 서울 지하철 3호선 역 근처에서 만나는 것이 좋아서 안국역 1번 출구에서 12시에 만나기로 했다. 근처에 유명한 한정식집도 있는데 예약이 안 되는 곳이라 일찍 도착하는 사람이 가서 번호표를 받기로 했다.
나도 조금 일찍 출발했더니 11시 30분에 도착했다. 일찍 온다고 하신 분께 전화했더니 안국역에 곧 도착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다른 한 분도 도착했다. 한 명은 일이 먼저 끝나서 11시경에 도착해 벌써 음식점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린다고 했다. 네 명이 모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역시 우리 팀!"이라며 우린 서로 쳐다보며 하하 호호 웃었다.
입 호강, 눈 호강
안국역에서 만난 우리는 점심 식사 자리로 이동했다. 나는 처음 가는데 한 분이 다녀왔다며 앞장섰다. 음식점은 서울공예박물관 앞에 있는 열린 송현녹지광장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광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호강이었다. 첫 번째 눈 호강이었다. 멋진 조각과 만발한 황화 코스모스, 휴식 공간 등 광화문 근처에 이리 멋진 공원이 있을 줄 몰랐다. 거기다 파란 가을 하늘이 공원을 더 멋진 풍경으로 만들어주었고, 가슴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있으면 공원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 멍이라도 하고 싶었다.
드디어 음식점 '꽃누리 들밥'에 도착했다. 음식점 이름도 예쁘다. 근사한 한옥 지하에 있었는데 음식점 입구에는 많은 분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찍 도착한 선생님 덕분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기본 4인분과 추가 메뉴로 고등어구이를 시켰다. 테이블마다 번쩍번쩍 빛나는 은 그릇 같은 반찬 그릇이 식욕을 돋워주었다.
상차림을 보며 두 번째 눈 호강을 하였고, 맛을 보며 입 호강이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묵, 튀김 가지무침, 각종 나물류, 된장찌개 거기다 고등어구이와 솥밥,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다져졌다. 맛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몇 번씩 반찬을 가져다 먹으며 우리 모두 오늘 입 호강 하는 날이라고 했다. 숟가락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반찬이 모두 맛있었고, 마지막에 먹는 누룽지마저 구수하게 잘 만들어져서 맛있었다.
식사 후에 요즘 안 가면 섭섭한 카페를 찾아갔다. 가는 길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날아간 것 같아서 더 정겨웠다. 열린 송현녹지광장 옆에 한옥이 이어진 골목길인데 윤보선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경복궁이 가까워서인지 한복 대여점도 있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외국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조금 더웠지만 카페 가는 길조차 즐거웠다.
카페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추석 명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두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고 간단하게 차려 먹거나 외식을 할 거라고 했다. 한 분은 추석에 시동생들에게 가족끼리 즐겁게 지내고 이번 추석에는 오지 말라고 했단다. 여행 가시는 분도 계셨다. 추석 이야기 외에 지인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귀 호강을 했다.
눈 호강 중의 눈 호강 서도호 개인전
모임 선생님 중에 자주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분이 계시다. 오늘 안국역에서 모인 것도 '서도호 개인전'을 관람하기 위함이었다. 충북에서 오신 분은 아쉽지만 내려가셔야 해서 식사 후에 차만 마시고 가시고 세 명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전시회에 오신 분들이 많아서 표를 사기 위한 줄이 길었다. 우린 미리 예매하고 와서 바로 입장권을 발급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서도호 전시회에 오신다면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방문하면 좋겠다.
서도호 전시회 입장권은 65세 이상은 신분증을 제출하면 무료이고, 일반은 8천 원이다. 서도호 작가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라고 한다. 이번 전시도 '집'과 '공간'을 주제로 5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을 잘 모르는 나도 작품마다 오래 머물러서 자세히 보게 되었다. 작품은 작가의 학창 시절 미공개 초기작부터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아우르며 보여준다. 실을 사용해서 만든 작품들이 많았는데 나도 모르게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게 되었다. 함께 간 지인도 신기하다면서 자꾸 작품 가까이 다가갔다.
많은 작품 중에서 오래 서서 관람한 것은 실제 크기로 만든 한옥이었다. 이 작품은 설치미술가답게 작가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한옥을 한지로 감싸고 흑연으로 문질러서 탁본한 '러빙/러빙:서울 집' 작품이다. 러빙/러빙은 발음이 비슷한 '문지르다'의 'Rubbing'과 '사랑하다'의 'Loving'이 연결된 작품이다.
4전시장 모니터에 작가님의 작품 제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어서 이해가 잘 되었다. 한옥 겉을 닥종이로 감싸고 문질러서 기와가 정말 현실적으로 보이고 나무의 결까지 살아 있고 문고리와 경칩 디테일까지 살아있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실제 집 크기와 똑같다는 것이다.
작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5전시실의 '완벽한 집: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은 지금까지 살았던 다양한 공간들의 요소를 한 집에 모았다. 형형색색의 문고리, 콘센트, 샤워기, 휴지 걸이, 수건걸이, 조명 등등 집에서 사용하는 다채로운 사물을 같은 크기로 입체적으로 설치해 놓았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추억을 소환하며 재미있게 보았다. 이 전시실은 아이들도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 전시실을 나오기 전에 마주한 유리 바닥과 벽이 모두 작품이었다. 유리 바닥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유리 바닥 아래 수초가 있나 싶은데 자세히 보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작은 인물상들이 유리 바닥을 받치고 있다. 작품 제목도 '바닥'이다. 벽도 그냥 벽지인가 싶은데 카메라로 확대해서 찍으면 앨범 속 수많은 사진이 보인다. 그저 놀랄 뿐이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 1층 3,4,5 전시실과 2층 MMCA 스튜디오에서 전시되어 있는데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감탄을 자아냈다. 2층 MMCA 스튜디오에는 작가의 자녀 두 명과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전시 공간인데 아이들이 그동안 자라면서 입었던 옷과 신발 등을 겹쳐놓았는데 작가의 사랑과 세심함이 느껴져서 그것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이다. 전체 작품을 관람하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관람하면 좋겠다.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옆에 붙어있는 작품명을 먼저 확인하고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작품을 보는 중에도, 전시실을 나오면서도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입장료 8천 원이 아깝지 않네요."
"오늘 눈 호강 잘했어요."
"가족과 한 번 더 와야겠어요."
다음에 온다면 도슨트 일정에 맞추어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시회가 2027년 2월 9일까지고, 이번 추석 연휴에는 추석 당일만 휴관이라고 하니 추석 연휴에도 가족 나들이로 방문하면 좋겠다. 근처에 있는 경복궁이나 열린 송현녹지광장을 함께 방문하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다.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입 호강, 눈 호강, 귀 호강까지 한 날이었다. 특히 '서도호 개인전'은 눈 호강 중의 눈 호강이 되었다.
<서도호 개인전 전시 정보>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기간 : 2026.08.27~2027.02.09(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관람 시간 : 월, 화, 목, 금, 일 10:00~18:00, 수, 토 10:00~21:00
*관람료 : 8,000원(65세 이상 무료, 마지막 주 수요일 무료 관람)
*지하철 :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