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기 좋은 장마철 ////
가장 큰 혁명은 자신의 혁명이다 !
주역의 괘 49번째 택화혁(澤火革)괘다.
혁띠로 허리를 조이는 일. 가죽 혁 이다.
낡은 것을 벗겨내고 새롭게 바꾼다 ? 뭐 대충 이런거.
혁 괘의 괘사를 대략 써보면 : 혁은 때가 무르익으면 사람들이 믿게 되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하면 후회가 없어 진다.
젠장 ~
내 낡음을 맨날 던저버리고 새롭게 거듭 난다는게 안덴다.
하루하루 같은 날이고 그놈이 맨날 그놈이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후진 날을 반복 할까.....
형통하지도 못하고 후회만 가득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실수를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와 성찰은 닮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을 가진다.
후회는 감정에 머물고, 반성과 성찰은 미래를 바꾼다.
그래서 진심으로 성찰하는 사람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단순히 마음이 아파서가 아니라,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용서한다”는 말도 어쩌면 이와 같은 뜻일 것이다.
누군가가 외부에서 용서를 내려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에서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되었을 때,
반복되지 않는 실수는 더 이상 현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로 정리된다.(그런가 ?)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정말로 ‘진심으로’ 반성 성찰하는 것이 가능할까 ?
자기 기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불가능 한 거 아닌가?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상황의 탓으로 돌리고, 혹은 기억을 조금씩 유리하게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고, 그 관대함 속에서 문제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가혹해지는 경우도 있다.
모든 잘못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고, 자신을 몰아붙이며, 감정 속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성찰과는 거리가 있다.
감정에 빠진 상태에서는 구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정확한 인식 아닌가 ?
진심으로 성찰한다는 것은, 자신을 감싸지도 않고, 무너뜨리지도 않는 상태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생각이 그 행동을 만들었는지,
그때의 자신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원했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 상황을 이해한 뒤, 같은 조건이 오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성찰은 고통스럽다.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을 격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그 과정에서 익숙했던 생각들이 흔들리고,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도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성찰을 ‘했다고 믿는’ 수준에서 멈춘다.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깊이를 통과한 사람은 달라진다. 같은 상황이 와도 예전처럼 행동 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미 다른 기준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용서’라는 말이 의미를 갖는다.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끝난 일 일까 ?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크게 후회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을 이해했느냐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느냐다.
진심으로 성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질 때,
사람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존재에서 벗어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