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에 아들에게 잘난 척하려고 쓰는 글

4차원 소리예술(?) 딸 놈 ////

by빼빼



호떡집에 불난다는 말이 있듯이 원래 토요일은 복권방에 불나는 날이다.

요즘은 비수기에 정 가운데이고 비도 온다.

또 옆에 상가가 새로 오픈해서 나의 복권방 앞에 주정차하기가 곤란하다.

거기다 월드컵까지 겹쳐있다.

3재가 아니라 4재가 한꺼번에 온 토요일이다.

지금 복권방 =절간


딱 쓰려던 딸 놈 얘기/ 그거 쓰기 좋은 날이다.


아내는 지혜로운 여자다.

절 때로 욕은 쓰지 말란다 나중에라도 손주손녀가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쪼금만 자중하기로 합의했다. 또 다행이다.

그래서 요놈조 놈으로...


절때음감 이란다 이놈 .

재작년에 한 얼빵한 4차원 예술가가 서울에서 "소리"를 전시(?)한 진귀한 광경이 있었다.

소리를 전시? 난 안 갔다. 엉엉 울을까 봐 겁났다.


내 딸 놈에 딸 놈 일곱 살/ 딸 놈에 아들놈 네 살/ 또 딸 놈에 아들놈 한 살./

그 딸 놈에 여덟 살 많은 남편 놈/

이렇게 다섯이서 대전에서 산다.


이 캐릭터!!! 뭐라고 시작할까....

(여기서 말하는 놈 이놈 그놈은 전부 "딸"이다.)


소싯적이든 지금이던 어디서부터 더듬어서 끊어 말해도 느을 쎈 하나님 그 아버지랑 댕긴다.

내 지난 전전전전.... 글들을 봐주신 분들은 대략 미루어 짐작하시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도 쫌 쎈 놈이다.

(지금은 안 쎈 놈)

사람으로는 누구 말을 듣고 사는 놈이 아녔거든.

엄마 아버지 각 학교 선생님들 군대 높은 사람들 들어간 회사 사장님 들

딱 한 번의 말만 들었어도 진작에 성인이 됐을 텐데....

이런 모지리 쎈 아빠가 둘씩이나 있는 그 딸 놈


자식은 부모에 관하여 객관적일 수 있지만

부모는 자식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


유치원 초 중 고 대학 때 까지도 아버지인 나를 내내 업고 다닌 놈이다.

이놈은 아버지룰 둘씩이나 없고 다녔으니 얼마나 세상이 든든했을까? 무거웠을까?

물론 나도 그놈을 안고 다녔다.

내어깨는 항상 엄청 무거웠다.


업고 다녔다 함은 자기 친구들 교회친구들 아줌마들 학교선생님들 교회목사님 등 등 등

모든 분들에게 아버지인 나를 얘기하고 전도(?)하며 댕겼다.

또 다른 하나님 아버지만큼이나 항상 입으로 업고 다녔다. (이 아버지 전도는 크게 안 했다.)

동네에서 내 이름은 없었고 아무개 아빠였다.


안고 다녔다 함은 내가 어떤 사람과 어디서 뭔 짓을 하더라도 그놈을 내려놓은 적이 거의 없다. 잠시도.

아빠로서 딸을 대하는 엄청 이쁨 ?

이 정도는 그냥 비할 바 아니다.

대학교는 안성으로 댕겨서 몇 번 안 갔지만 초 중 고 때는 이놈 보러 아무 때나 갔다.

학교나 학원 교회를 시도 때도 없이 슬리퍼 질질 끌고 갔다.

선생님들도 이런 학부모를 꽤나 부담스러워했다.

그래도.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과도 나중에는 사적인관계로 까지 발전한 경우도 있다.


이놈이 내가 예측하는 거리를 벗어나면 난 보이지 않는 경호원(?)을 항상 준비해 놨었다.


이놈은 그냥 한 살 때부터 나하구 차원이 안 맞고 4차원였다. (이런 사례는 기회 되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겼다면 / 분명 그건 그놈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은 아녔을 거다.

꼬마지만 난 그놈을 완벽하게 믿었다.

이놈에 대한 절대적이고 완전한 믿음은 어쩌면 또 다른 나 말고 아버지 때문이다.

그 아버지는 안 믿어도 딸 놈은 믿었다.

하여튼 이놈이 안산을 벗어난다고 하면 이놈 동선에 맞춰 난 지인들 중 한 명 ,

쎈 경호원에게 사정하고 부탁해 놨다.

언제 무슨 일 이 생길지 모르니 딸아이 근처에서 대기.


내주둥이는 언제든 씩씩하게 놀도록 아이를 놔줬다.

그러나 마음은 그럴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거 마냥 불안해서 ,

끄러앉고 느을 못 가게 하고 단속하고 싶었다..

( 이 딸 놈도 요런 걸 좀 쪼끔이라도 겪어보면 어쩔지... 고소할 거 같다)

대략 5학년때부터 안산을 벗어나더라고. 당시에 안산도 험한데 더 험한 동네로. 먼데로...


그로부터 10년 정도 후쯤

여덜살 많은 지금에 남편.

사위를 만나고부터는 내 맘고생도 끝이고. 쎈 경호원들 월급(돈은 아님)도 안 나갔다.

내 사위 첫인사 때 당시에 105킬로 /

쎈놈 보다 더 쎄게 생겼음.


서너 살 때부터 뭐든 지 성질대로 멋대로 해야 되는 게 어쩜 어떤 놈하구 비슷하다.

도대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는 게 별로 없다.

따져보고 계산해서 꼭 합당한 사유로 설득되지 않는 건 진도가 안 나간다.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장난감 고르는 거 친구집에서 자는 거 쫌 커서는 학교 가기 싫은 거 등등 ,

배우자인 아내가 나 때문이 아니고 아들놈과 얘 때문에 가출한 적도 있다.

( 아.... 이 발언 이건 아내의 심의 검열대상 건인데..?)

그렇다고 인자하신 아비인 내가 뚜드려 패는 걸 안 했을까요? 착한 아빠라서?

너무 이쁜 딸내미라서?.... 이 말은 요기까지만.


이딸놈 얘기는 몇 페이지 연장된다.

손님들이 드믄 드믄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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