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에 아들에게 잘난 척하려고 쓰는 글

초자와 불초자 ///

by빼빼



아니 불 닮을 초 아들 자.


아비가 생략된 말이란다.

아비를 닮지 못한 아들. 뭐 불초자는 이러 이렇습니다 ~ " 할 때 쓰는 말. 못난 놈이란 뜻


일요일 복권방 내 6시는 지루하다 , 그래서 또 나부다 못난 아들놈에게 잘난 척을...

정말 잘난 척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는 척은 나에겐 끝도 없다.


한겨울 애기 때 할아버지가 날 등에 업고 공주 시골에 기인~ 원터 둑길을 가시면서 그러셨다.

아마 내 축농증 병을 민간요법으로 치료해 주시던 약방집을 가던 때 이다.

대략 여서 일곱 정도 됐을 때 일까....?

아무게야.. 넌 서울 가서 공부 많이 해서 할아비처럼 이런 데서 힘들게 살지 마라....

(아 ~ 갑자기 눈물 나네...)

우리 할아버지는 뭐가 그리 힘드셨을까?

내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해서 , 어떠 훌륭한 손자를 바라셨을까?


우리 아버지.

느을 나를 채벌 할 때 하시는 말씀, 너 이 색꺄!! 지금 공부 한하면 지금은 눈물 흘리지만 , 나중엔

피눈물 흘릴 거야~!!!

우리 아버지 한 개밖에 없는 친구분이 유명한 장기욱 아저씨다.

70~80 년대 법조계를 주름잡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 아저씨 옆에서 그 권력의 큰 맛을 체감하셨다.

어쩌다 가방모찌 그 권력의 부스러기 정도 로도 , 어느 관공서 한두 군데쯤은 프리페스 하셨다.


검사!

요즘 그 X 같은 검사들.

이 썅노무색끼들. (아마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됐다면 , 지금의 이 정도보다 단연 탑으로

개쌕끼가 됐을 거다. 대한민국은 느을 나에게 감사하여야 한다.ㅎㅎ)

장남인 나에게 공부 잘 시켜서 아버지의 꿈인 검사를 만들어서 , 아마도 V0가 됐을 거다.

근데 내가 또 그렇게 호락호락 고분고분하진 안았잖아요?


그 아버지의 훌륭한 뜻을 깊이 이해하여 , 무려 다섯 살 때부터 공부만 빼고 나머지 것 들을 찾아서 가출했지.

지금의 난 아비 닮지 않은 놈, 불초자 됐네.

돌아가시기 전에 한동안 나랑 놀러 많이 다녀셨지... 내가 안마시술소도 한 번 같이 가셨어.

(너 이건 엄마한테 말하면 안 데겠다" 그러셨어. 뭔 일이 있으셨나?)


또 아빠 안 닮은 색끼 또 하나 있음.

불초자 내 새끼 아들.


아주 애기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들 친척들 또 내 친구들한테 ,

수 없이 들은 나의 훌륭한 행적들 때문였을까?

도대체 나를 안 닮았다.


난 나를 닮고 커 가고 살기를 지금도 바란다. (이 고단한 삶을)

많은 아빠들을 만나고 살면서 물어봤다.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같이 살 길 원하는가?

이상하리 만치 자신들의 삶을 부정하는 건지 그들의 대답들은 한결같이 안 그랬다.

심지어는 대학교수들 두 , 무려 부자들도...

그냥 나만 욕심을 냈다.


그래서 내 애들에겐 내가 했던 재미나는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안산서부터 대부도까지 한여름에 둘이서 걸어가는 거 (애 가 초등학생 2학년 때)

지리산 화엄사부터 천왕봉까지 일주일에 종주(초등학생 4학년 때) 그 후로 여러 번 , 군대 갈 때 사서오경 바카라을 들이밀며 읽고 제대해.

했던 것 등등.

각종 내 술자리나 모임을 가능한 한 많이 데리고 다니려고도 했다.

동네에서 어쩌다 착한 일을 할 기회가 생기면 보란 듯이 아이들과 자랑(?) 스럽게 해야 했다.

보여주고 싶고 가르치고 싶었거든. (부자유교) <=== 차례대로 보신 분은 아실 듯.

심지어 14년 당해연도 세월호 일을 고스란히 겪고 , 있고 난 후, 대바카라위원회 일을 보러 댕길 때 두그 같이 댕겼다.

(당시에 난 어떤 슬롯단체 사무국장 직을 맡고 있었다.)

아빠는 이렇게 훌륭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야! " 이것도 보여줬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걸 함께하며 보여줬다. 내 아버지에 비하면 200배는 더 노력한 거 같은데.


그런데?

왜 불초자가 된 거지?

어쨋꺼나 저쨋꺼나 내 아내 몰래 나 늙으면 안마 시술소 한번 같이 갈 정도라면

난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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