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에 아들에게 잘난 척하려고 쓰는 글

나에게만 일어나는 특정 한 일?? ///

by빼빼



나이 60에 삶의 패턴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의 패턴이란 그 사람의 습관이고 행동양식이고 , 그건 그 만의 독특한 운동성이다.

경험 성격 무의식 등 복합적이다.

꼭 60살이 아니더라도 30년만 살아봐도 살아온 족적의 관성을 벗어난다는 건 쉽지 않다.

나쁜 결과를 여러 번 겪었는데도 언젠가 비슷한 상황에서 또 같은 선택을 할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가보면 좋은 결과는 거의 없다.

어쩌면 이건 내가 나쁜 놈이기 때문에 매 번 이렇게 같은 결과 일거라고도 생각 든다.


발타자르 그라시인의 사상을 이어받은 쇼펜하우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극단적인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나열한다.

사대성인도 인간의 못된 성(性)을 조금이라도 어찌어찌해 보려고 노력했을 거 같다.

그분들 덕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좋은 세상이다.

힘없고 갖은것 적은 이들도 그럭저럭 발붙이고 살아들 간다.


내 지난 경험으로 봐도 힘없고 갖은것 없는 이들에게 더없이 못되게 한 적이 아주 많다.

그게 능사가 아니란 걸 언젠가부터 알았다.

힘의 논리로만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나도 큰 힘 앞에서 더욱더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 난 후에는

난 그럴 순 없었다.

알량한 나를 위해.....


그랬는데.


어떤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반복된다.

비슷한 갈등을 자주 겪고, 비슷한 선택 앞에 서며, 같은 종류의 결과를 몇 번이고 마주한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서로 다른 세계를 사는 것처럼, 같은 현실 속에서도 경험의 분포는 극명하게 갈린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운’이나 ‘환경’으로 설명하려 한다.

물론 그 영향은 분명 존재하는 거 같다.

출발선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과 기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반복이 있다.

특정한 상황이나 결과가 유독 자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나처럼 그 상황을 끌어들이는 어떤 패턴이 함께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 아들놈이 이런 내 성향을 지적한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는 방식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비슷한 결과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특정한 ‘경험의 궤적’이 형성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갈등을 피하려는 사람은 처음에는 평온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쌓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더 큰 충돌을 맞게 된다.

반대로 초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은 갈등의 빈도는 줄어들 수 있다.


같은 ‘갈등’이라는 사건이지만, 누구에게는 반복되고 누구에게는 드물게 나타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반복될까?”가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일을 반복시키고 있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외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피하는 한, 반복은 계속된다.

반대로, 이 질문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반복되는 경험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일종의 신호일 수 있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며, 어떤 패턴 속에 머물러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면 같은 일이 계속되고, 읽어내기 시작하면 비로소 흐름이 바뀐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일이 나에게 특별히 많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만들어내는 방식 속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서

“나는 이 흐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그때부터, 드물지 않던 일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요즘은 불편하고 나쁜 결과들이 천천히 줄어드는 걸 느낀다.

씁쓸하다.


다정하고 친절하지 않으니까 나쁜 결과가 점점 줄어든다 .

나를 위해서 서로를 위해서 이게 맞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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