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피의 정치학, 질소 포장된 거짓말

by정성균

우리는 보통 부피가 크면 당연히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 몸의 감각이 그렇게 지각을 하는 것이지요. 1891년 프랑스의 의사 샤르팡티에는 이 기묘한 인지적 오작동을 증명하는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무게가 똑같은 두 개의 상자를 준비하되, 하나는 아주 큼직하게 부풀려 만들고 다른 하나는 작게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들어보게 한 것입니다. 덩치 큰 상자를 마주한 우리 육체는 본능적으로 힘을 잔뜩 주게 됩니다. 외형이 큼직하니까 당연히 무거울 것이라는 선행 예측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막상 상자를 들어 올렸을 때 내부가 텅 비어 있으면, 손끝이 허공을 치듯 맥없이 출렁이고 맙니다. 미리 계산한 무게와 손끝이 마주한 실제 무게 사이의 낙차 때문에 온몸이 휘청이는 것입니다. 예상보다 허무하게 들린 큰 용기의 가벼움은 손끝에 일종의 기만감을 남기는 반면, 동일한 무게임에도 기대 없이 들어 올린 작은 함은 도리어 묵직하다는 착각을 완성하게 됩니다. 시각이 촉각을 지배하고, 외형의 크기가 내부의 밀도를 왜곡하는 물리적 착시가 일어나는 셈이지요. 인간의 감각 구조에 새겨진 이 지독하고 오래된 오류는 단순히 실험실 안의 유희로 끝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규모로 실체의 가치를 가늠하려는 이 무력한 본능은, 슬롯적 계약과 매끄럽고 현란한 이야기들이 움직이는 정치의 마당 위에서 그대로 반복되곤 합니다.


몸이 겪는 이 기묘한 착각은 몇 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선거철의 거리에서 똑같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유세 계절이 오면 대로변은 온통 천문학적인 숫자들로 메워집니다. 수십 조 원이 들어간다는 개발 공약과 재건의 약속, 세상을 한 번에 바꾸겠다는 거친 외침들이 스피커의 찢어지는 굉음 속에 쏟아져 나옵니다. 붉고 푸른 천 조각들이 가로수 사이를 빽빽하게 메우며 시야를 가로막기도 하지요. 펄럭이는 소음과 색채가 주는 이 질량감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의 감각을 아주 손쉽게 압도해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로 경계해야 할 지점은 눈앞의 달콤한 구호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약속을 어디서부터, 어떤 순서로, 누구의 재원으로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경로를 묻는 순간부터 갑자기 회피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정치의 언어에 있습니다. 표를 구걸하는 이들은 예산을 확보하고 법안을 통과시키는 지난한 진통보다는, 봉지를 부풀리는 질소 한 모금처럼 자극적인 숫자 하나를 던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런 실체도, 구체적인 이행 대바카라도 없는 공허한 문장들이 단지 부풀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중심가를 가득 채울 뿐이지요. 재원을 묻는 질문에는 “비전이 없다”라고 몰아붙이고, 세밀한 명세를 요구하는 검증에는 “발목 잡기”라는 이름표를 붙여버립니다. 의심은 시민이 행사해야 할 당연한 권리임에도, 어느새 현장에서는 질문하는 사람보다 환호하는 사람이 더 순수한 존재처럼 소비되곤 합니다. 정치는 그렇게 실천을 위한 검증 절차를 슬그머니 건너뛴 채, 부풀려진 공기만 군중 속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소중한 삶의 자리는 한낱 배경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축제 때마다 시장 골목과 재개발 구역, 침수된 반지하와 무너진 공사장 앞에 수많은 카메라가 몰려듭니다. 장화를 신고 국밥집 의자에 앉아 서민의 손을 붙드는 장면이 매번 되풀이되지만, 정작 플래시가 꺼진 뒤에도 그 공간의 공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번쩍이는 유세차 불빛 뒤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폐지를 주워 리어카를 끄는 노인의 구부정한 등은 저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와 단 한 마디도 섞이지 못하는 평행선을 달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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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바카라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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