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99년, 아테네 감옥의 공기는 무겁고 고요했습니다. 늙은 스승 소크라테스는 평소와 다름없는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그의 곁을 지키던 제자들은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즙을 낸 독미나리 잔을 들고 들어온 간수조차 차마 스승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 울었습니다. 재판장의 소란이 사라진 뒤, 감옥에는 마지막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스승의 죽음 이후, 젊은 철학자 플라톤에게 그날의 비극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이자 질문이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은 폭군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다던 아테네의 시민 배심원들이었습니다. 다수의 뜻을 따른 투표가 어떻게 한 철학자를 합법적으로 죽음으로 몰 수 있는가. 그는 평생 이 질문을 붙들고 고뇌해야 했습니다.
‘다수의 선택은, 언제나 옳은가.’
이 오래된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리 중(衆) 자와 어리석을 우(愚) 자를 쓰는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흔히 중우정치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저 '어리석은 대중의 정치' 정도로 이해하며 남을 비난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치학적으로 이 개념은 민주주의의 절차와 다수결이라는 형식은 지키고 있으나, 올바른 이성과 합리적 토론이 사라진 채 대중의 일시적인 감정과 선동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민주주의가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스의 역사에는 대중의 군중심리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전해집니다. 아테네의 정직한 정치가 아리스티데스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글을 모르는 한 농부가 그가 아리스티데스인 줄도 모르고 찾아와 투표용지인 조개껍데기에 그의 이름을 대신 적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리스티데스가 이유를 묻자 농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잘못한 건 모르겠고, 어디 갈 때마다 사람들이 그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게 그냥 듣기 싫어서요."
중우정치는 특정 개인의 지적 수준을 평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농부의 마음처럼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고, 깊은 대화보다 당장의 시샘이나 자극적인 구호가 앞설 때 나타나는 우리 안에도 숨어 있는 인간적 약점입니다. 인터넷과 슬롯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 뉴스가 빠르게 퍼지는 오늘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주장인지를 구별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흔드는 구호는 빠르게 번져가지만, 우리 삶을 바카라임질 정바카라은 오직 냉정한 검토와 치열한 토론 속에서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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