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 시의 햇살은 아직 부드럽고 순합니다. 결이 고운 목재와 짙은 회색의 철제 프레임이 단단하게 맞물린 벤치에 몸을 기대면, 등 뒤로 키 큰 나무의 그림자가 천천히 길어지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지요. 칠엽수(七葉樹). 사람들은 일곱 갈래의 부채를 지닌 이 식물을 프랑스 말인 '마로니에'라 부르며 저 먼 타국의 거리나 노천카페를 떠올리는 상징처럼 여기곤 하지만, 정작 발치에 앉아 나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참 드뭅니다. 나무는 가만히 서 있는 듯 보여도, 계절마다 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발치에는 지난밤 떨어진 꽃자루 몇 개가 무심히 굴러다닙니다. 이 초록의 거인은 누구에게도 제 삶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묵묵히 같은 자리에 잎을 틔울 뿐이지요. 칠엽수의 봄은 이렇게 조용히 시작됩니다. 겨우내 어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끈적한 수지(樹脂)로 겹겹이 싸매 두었던 겨울눈이 오월의 볕에 녹아내릴 때, 나무는 비로소 제 몸을 감싸고 있던 갈색 껍질을 풀어냅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점성(粘性)은 추위를 견뎌낸 정직한 흔적입니다.
액체 속에는 긴 겨울을 인내한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굳게 닫혔던 껍질이 벌어지고 안에서 아기 손바닥보다 작은 연둣빛들이 기지개를 켤 때, 숲의 시간은 잠시 숨을 멈춥니다. 막 나온 어린잎은 차가운 바람과 마른 공기를 견뎌야 하지만, 가지 끝에서는 다시 연둣빛이 올라옵니다.
나무 그늘 아래로 깊숙이 들어가 앉으면 오월의 마른바람이 잦아들며 공기의 결이 한층 보드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밝은 봄볕이 나뭇잎에 걸러져 한풀 꺾이고 주변이 차분해지면, 발치에서는 비 온 뒤의 숲처럼 촉촉하고 싱그러운 흙 내음이 올라오지요. 하나의 자루 끝에 모여 달린 일곱 갈래의 엽편(葉片)들은 태양을 향해 펼쳐진 손바닥 같기도 하고, 공중에 낮게 드리운 초록 지붕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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