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끝까지 듣지 않는가

by정성균

식탁 위 유리컵 겉면에 물방울 하나가 맺혔습니다. 매끄러운 표면을 따라 아주 천천히 내려오다 어느 지점에서 잠시 멈추었지요. 그러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소리는 작았지만 이어지는 적막은 길었습니다.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의 문장도 함께 끊겼습니다.


상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문장은 마디마디 꺾였고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컵 주변을 맴돌던 손가락은 멈췄다 움직이기를 되풀이했지요. 입술 사이로 나온 목소리는 점차 낮아졌습니다. 소리가 작아지는 속도만큼 이야기를 따라가는 걸음도 함께 늦춰졌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깊이 생각하기보다 그렇게 반응하는 편이 자리를 유지하기에 자연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시선은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으로 향했고 다시 컵 옆에 맺힌 차가운 물기로 옮겨갔습니다. 또렷한 물방울에 마음을 빼앗기는 동안, 상대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지만 모든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붙잡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 듣기도 전에 이미 내용을 다 파악했다고 치부해 버리는 습관 때문이지요. 한나 아렌트가 경고했던 사유의 게으름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던 셈입니다. 낯선 고백조차 이미 알고 있는 틀 안으로 밀어 넣어 정리해 버렸으니, 말들은 상대의 것이 아니라 안에서 닫혀버린 문장이었습니다.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으나 결국 다시 삼켰습니다. 대신 조금 더 깊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습니다. 그럴듯한 태도는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방패로 쓰였습니다. 마틴 부버가 말한 인격적인 만남 대신, 상대는 점점 흐릿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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