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위의 로맨스, 힐튼의 링링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을 거슬러 오르는 내내, 내 머릿속은 온통 STP(오수처리장치) 고장으로 뒤집어쓴 똥물과 그 지독한 냄새뿐이었다. 도저히 이 꼴로 링링을 만날 수는 없었다. 외출 준비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가장 먼저 오물로 뒤집어쓴 머리를 몇 번이나 감았는지 모른다. 독한 세제로 비벼대느라 두피가 아릴 정도였다. 손톱 사이에 낀 시커먼 벙커오일도 정비용 솔로 박박 문질러 말끔히 제거했다. 땀과 기름에 찌든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아껴두었던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챙겨주신 샤넬 향수까지 손목과 귀 뒤에 뿌리자, 거울 속에는 찌든 기관사가 아닌 풋풋한 청년이 서 있었다.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하듯,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니, 멋진 소년으로 둔갑하였다.
1983년, 나는 스물세 살의 펄펄한 총각이었다. 유교 사상이 엄격한 시골 농촌 집안에서 자란 탓에 성(性)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못해 폐쇄적이었다. 해양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승선 생활을 시작했으니,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볼 기회가 없었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 가기 전에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맥주병 따듯이 직업 여성에게 '총각 딱지'를 바치곤 하지만, 내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링링을 만난다는 사실이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어머니와 함께 왔다. 이전에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도 서툰 영어 때문에 대화가 자주 끊겨 어색한 침묵이 흐르곤 했었다. 링링의 어머니 앞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서 있게 될까 봐 속이 타들어 갔다.
링링과의 만남은 정말 우연히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었다. 싱가포르 항구에서 잠시 스친 연이 이렇게 급속도로 발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에서는 당시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신혼여행도 고작 부곡온천이나 경주 보문단지, 좀 산다는 집안이라야 제주도 여행이 고작이었다. 해외여행은 감히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반면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잘사는 도시 국가라 해외여행이 이웃집 드나들듯 흔했다. 그런 배경 차이까지 생각하니 더욱 위축되었다. 도저히 혼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방콕 사정에 밝은 선배 3등 항해사와 그의 태국인 여자친구 수지아에게 가이드를 간곡히 부탁하여 동행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약속 장소인 힐튼 호텔 로비로 향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저만치 서 있는 링링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그 모습이 어처구니없었는지, 옆에 계시던 링링의 어머니가 오히려 어색한 표정을 지으셨다.
하지만 내 모든 걱정은 기우였다. 사랑하면 콩깍지가 쉰다고 했던가. 링링을 보는 순간, 내 모든 불안과 어색함은 콩깍지 뒤로 사라져버렸다.
수지아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수상 보트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투어를 시작했다. 태국에서 가장 큰 강이자 수도 방콕을 관통하는, 태국인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젖줄이다. 서울의 한강,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로도 부족했다. 수상 보트는 마치 서울의 지하철 노선처럼 빨강, 노랑, 파랑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노선표에는 선착장 이름이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어 목적지를 찾기가 쉬웠다.
보트 내부는 버스와 비슷했지만, 특이하게 의자 밑에 구명조끼가 비치되어 있었다. 강 양옆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은 마치 영화 속에 쏙 빠져든 기분을 선사했다. 물 위에 나무 기둥을 박아 그 위에 지은 그림 같은 수상 가옥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장마철에 홍수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 정도로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이국적이었다.
수상 가옥뿐만 아니라 은행, 학교, 사찰, 시장 등 도시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강 위로는 조정 경기장에서나 볼 법한 카누 모양의 배들이 쉼 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프로펠러를 달아 속도가 무척 빠른 '강 위의 택시'였다. 이 강에는 신호등도 교통순경도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사고 한 번 나지 않았다. 교통 체증이 없어 출퇴근 시간에 방콕 시민들이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방콕은 진정한 '물의 도시'였다.
수지아는 방콕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변, 파타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하얀 백사장과 해변을 따라 늘어선 높은 빌딩들을 보니 부산 해운대가 절로 떠올랐다. 파타야는 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된 배경에는 이웃 나라 베트남 전쟁의 비극이 숨어 있었다.
1960년에 시작되어 1975년까지 15년간 이어진 베트남 전쟁. 수백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끔찍한 전쟁 중에도 미군들은 포탄을 피해 이곳 파타야에서 휴식을 즐겼다. 그리고 그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여성이 필요했다. 여성이 부족하자 키 큰 남성들이 여성으로 변장하여 그 수요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파타야의 유흥업소에는 실제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춤을 추는 '게이'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미군들에 의해 파타야는 기형적이고 다양한 밤 문화와 성 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웃 나라에서는 폭탄의 섬광이 번쩍이고 있을 때, 파타야 해변은 유흥의 불빛으로 휘황찬란한 밤을 맞이했다. 원숭이가 살던 숲은 빌딩 숲으로 변했고, 온갖 인종이 뒤섞인 '인종 백화점'이 되었다. 비극이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날로 번창하는 부유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파타야 해변에서 요트를 한 대 임대했다. 50톤 정도 되는 제법 큰 규모였다. 한국 법상 25톤 이하는 소형 선박 조종사 면허가 필요하지만, 25톤 이상은 임시 항해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 해기사 면허를 소지하고 안전 교육까지 이수한 전문가들이었기에, 직접 운항할 자격이 충분했다. 선배 3등 항해사가 선장이 되고, 내가 기관사가 되어 요트를 움직였다.
승객은 링링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수지아 세 명뿐이었다. 요트는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먼바다로 나갔다. 링링의 어머니인 원해림(元海林, 웨하이린) 씨는 한국의 조선 및 해양 산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다. 바다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고향이 중국 산동성 칭다오(青岛)라고 하셨다. 이름에도 '바다(海)'와 '숲(林)'이 들어가 있으니, 과연 바다와 인연이 깊은 분이었다.
한 시간 정도 항해하여 코란 섬에 도착했다. 닻을 내리고 요트에서 내려 해변을 걸었다. 오염되지 않은 고운 모래는 하얀 눈처럼 눈이 부셨다. 열대의 뜨거운 태양도 이 수북이 쌓인 하얀 눈을 녹이지 못하는 듯했다. 맑고 투명한 바닷속은 산호 무덤과 대왕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즐기고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수족관 같았다. 원주민들은 거북이를 만나면 바다의 용왕으로 모시며, 술 한 병을 대접하여 얼큰하고 기분 좋게 바다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태국 정부는 거북이를 보호 동물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었다.
코란 섬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와 울창한 열대우림이 빚어낸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바다는 깊고 반짝이는 에메랄드빛이었다. 우리는 요트를 타고 더 멀리, 더 깊은 바다로 향했다. 해양경찰에서 임시로 허가해 준 항해 구역은 육지로부터 24마일이었다. 해도에 정확히 표기해 둔 그 푸른 바다는 오직 우리들의 것이었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석양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오렌지색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열대의 구름은 붉은 수평선 위에서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황홀한 석양을 감상하기 위해 링링과 함께 요트의 가장 높은 곳, 톱 브리지(Top Bridge)로 올라갔다.
그 순간은 훗날 보게 될 영화 '타이타닉'의 그 어떤 장면보다 더 영화 같았다. 황홀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나는 요트의 난간대(Handrail)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링링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췄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서로의 숨결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링링이 살짝 눈을 감아주었다.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의 조명이 찰나의 순간 링링의 얼굴을 비췄다. 내 생애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눈가에 감동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살포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눈물과 열대의 땀방울이 입술을 타고 혀로 전달되었다. 짭짤했다.
우리는 더 격정적으로 포옹했다. 그 속에는 사탕보다 더 달콤한 사랑이 있었다. 우리의 입술은 마치 자석이 된 듯 떨어질 줄 몰랐다. 잔잔하면서도 웅장한 음악이 내 귓가에 환청처럼 흘러나오는 듯했다.
Near, far, wherever you are 가깝든, 멀든, 그대가 어디에 있어도
I believe that the heart does go on 난 내 마음이 영원하리라고 믿어요
링링과 나의 사랑 앞에는 거대한 태평양과 인도양이 가로막고 있었다. 오작교도 없는, 하늘처럼 넓고 깊은 바다였다. 거센 바람도 불고, 태풍도 몰아칠 것이다. 때로는 거대한 빙산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링링과 나, 잭과 로즈는 타이타닉처럼 결코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이 거대한 바다 위에서 영원할 것이라고, 나는 붉게 타오르는 석양을 바라보며 맹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