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보트피플 BOATPEOPLE

20mm 철판 속의 누에고치

by최경열

20mm 철판 속의 누에고치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란다. 잠시 나비가 되어 세상을 훨훨 날던 휴가를 끝내고, 나는 다시 누에 애벌레가 되어 선원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나는 지금 20mm 철판으로 둘러싸인 누에고치 속에 있다.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이 철판들이 모여 부력을 만들고, 그 속에서 수천억 가치의 화물과 선원들이 다시 나비로 태어나기 위해 꿈틀거린다. 0.1mm A4 종이 한 장도 배를 만들면 바다에 뜨듯, 이 육중한 쇳덩어리를 띄우는 20mm 철판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방콕의 추억을 뒤로하고 사지로 향하다

태국 방콕항에 사랑과 추억을 남기고 배는 출항했다. 링링에게서 싱가포르에 잘 도착했다는 전보가 왔다. 도선사가 하선하자 선장은 'Run up' 명령을 내렸다. 협수로를 벗어나 대양에 진입했다는 신호이자, 긴장감 넘치는 3교대 당직 업무의 시작이다.

침실로 돌아와 다음 당직을 위해 누웠으나, 옆방 2 항사 방에선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화물선의 방음 기준은 60 데시벨이라 옆방의 작은 소리도 선명하게 들린다. 여자들이 북적이던 갑판(Poop deck)의 임시 포장마차는 이미 철거되었고, 덩그러니 로프 감는 윈치(Winch)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원들은 밀항자가 있는지 배 구석구석을 살피고, 황천 항해를 대비해 소화기 등 안전장비와 화물 고박 상태를 점검했다. 이는 거친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의 오래된 습관이다.


죽음의 파도 속에서 만난 유령선

1983년 9월, 장보고함은 베트남 호찌민 해상에서 한국을 향해 변침했다. 집채만 한 너울에 배는 마치 접영을 하듯 파도 속으로 푹 잠겼다 올라오길 반복했다. 배가 앞뒤로 요동치는 '피칭(Pitching)'이 심해지면 배 허리에 하중이 집중되어 선체가 두 동강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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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레이다에도 잡히지 않는 조그만 어선 하나가 보였다. 방향 없이 표류하며 우리 배와 충돌할 듯 위태롭게 출렁였다. 피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수십 명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장은 즉시 엔진 정지를 명령했다.

가까이서 본 그 배는 처참했다. 기울어진 선체에 수십 명이 타고 있었는데, 헝클어진 머리와 넝마가 된 옷차림은 노숙자보다 더 끔찍한 몰골이었다. 노약자, 어린아이, 임산부까지 뒤섞인 모습은 전쟁터의 난민 수용소 그 자체였다. 피골이 상접한 그들은 마치 유령선 같았다. 그들이 내뱉는 것은 말이 아니라 목숨을 구걸하는 처절한 절규였다. 그대로 두면 몇 시간 뒤 모두 수장될 운명이었다. 이걸 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그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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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보다 무거웠던 생명의 무게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탄압을 견디지 못한 국민들은 자유를 찾아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이 바로 보트피플(Boat People)이다.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향하는 수백 킬로의 바닷길은 지옥이었다. 해적에게 털리고 수장되거나, 식량과 물이 고갈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들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당시 냉전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난민 수용은 민감한 문제였다. 해운회사는 화물 운송에만 주력하라 지시했고, 선장들은 난민을 만나면 피해서 항해하라는 묵시적 압박을 받았다. 만약 난민을 데리고 입항하면 간첩 조사를 받으며 고문에 시달려야 했고, 선장은 해고되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하지만 장보고함의 선장은 결정했다. 배 위에서는 국가 통수권자와 다름없는 그가, 모든 이념을 떠나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판단한 것이다. 우리는 전 선원을 소집해 그들을 지원했다. 엔진이 다시 돌 수 있도록 윤활유와 배터리, 디젤유를 보급하고 식량과 식수, 이불을 던져주었다. 검은 배기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시동이 걸리자 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망망대해에서 수십 명의 생명을 살린 그 순간, 나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보람을 느꼈다. 그들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손을 흔들며 안전한 항해를 빌어주었다.


잊힌 영웅, 그리고 남겨진 상처

우리는 지금 다낭 앞바다를 지나고 있다. 미군의 휴양지이자 보트피플의 탈출구였던 이곳엔 이제 성공한 난민들이 세운 '영흥사'와 67m의 해수관음사가 바다를 바라보며 죽은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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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함이 부산항에 입항했을 때, 선장님을 기다린 건 박수가 아니라 사복 경찰이었다. 안기부로 끌려간 선장님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문을 당해 얼굴이 피멍이 든 채 돌아오셨다. 결국 온라인 게임을 잃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금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다.

선장님의 결정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내 가슴 한구석엔 울화통이 식지 않는다. 때는 1983년, 군사독재가 서슬 퍼렇던 시절 법보다 무서운 인간의 도리를 지켰던 그 선장님의 희생을 우리 국민들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제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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