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욕망의 방콕으로

총각딱지를 뗄 수 있을까?

by최경열

하늘의 먹구름, 거대한 세차장의 시작

인도 캘커타 항을 뒤로하고 푸른 바다로 기수를 돌리자마자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청명하던 하늘 위로 잉크를 뿌린 듯 시커먼 구름이 무섭게 몰려왔다. 열대 지방의 불청객이자 손님인 '스콜'이었다. 서서히 사방에 어둠이 깔리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포수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비는 단순한 빗줄기가 아니었다. 인도 갠지스강에서 배 곳곳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던 시체 탄 먼지와 매캐한 연기를 말끔히 씻어내는 '천연 세차'였다. 사우나에서 묵은 때를 시원하게 벗겨낸 것처럼 가슴속까지 개운해졌다. 열대 여행 중 스콜은 종종 경험했지만, 이토록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스콜은 처음이라 경이롭기까지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태양이 눈이 부시도록 작렬했건만, 삽시간에 거대한 검은 이불이 바다 전체를 덮쳐버린 것이다. 선박의 길이는 자그마치 250m. 하지만 빗줄기 때문에 가시거리는 100m도 되지 않았다. 조타실에서 내려다보면 배의 앞머리인 선수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딱 중간까지만 보였다. 마치 반 토막 난 유령선이 항해하는 것 같은 기괴한 광경이었다.

선박에게 가시거리 확보 실패는 치명적이다. 태풍에 전복되는 사고보다 무서운 것이 전방 시야를 놓쳐 발생하는 충돌 사고이기 때문이다. 짙은 안갯속을 질주하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었다. 야간에는 별빛이나 등대라도 보이지만, 장대비는 그 어떤 빛도 투과시키지 않았다. 망원경도 무용지물이었다. 오직 레이다와 당시의 원시적인 항해 장비에 의존한 채, 주변 선박들에게 "뿌우웅-" 기적을 울리며 신호를 보냈다. 속력은 최대한 줄였고, 긴장감은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사정없이 퍼붓던 빗줄기는 샤워기 밸브를 뚝 잠그듯 순식간에 멎었다. 먹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하늘이 말끔히 개었다. 스콜은 갠지스의 죽음이 남긴 흔적을 깨끗이 닦아냈고, 뜨겁게 달구어졌던 철갑판과 거주구 외판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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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바다, 해기사의 운명

스콜이 지나간 뒤 배는 다시 적막한 망망대해로 진입했다. 푸른 하늘과 검푸른 바다, 그리고 수평선. 갈매기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절대 고독의 공간이었다. 레이다를 반경 50km까지 확대해 봐도 화면에는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이 거대한 쇳덩이를 움직이는 이들을 '해기사'라 부른다. 화물의 적재와 항로를 바카라임지는 항해사, 그리고 엔진과 전기를 담당하여 배의 심장을 뛰게 하는 기관사로 나뉜다. 요즘이야 자동화 시스템이 발달했다지만, 당시 기관사의 업무는 그야말로 중노동의 연속이었다.

원양선은 톤수와 상관없이 22명이 법정 승조원이다. 주야 3교대로 당직이 돌아가는데, 조타실에는 항해사와 조타수 2명이,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기관실에는 기관사와 조기수 2명이 한 조가 되어 배를 지킨다. 1980년대는 위성 통신이 걸음마 단계라 모스 부호를 두드리는 통신장이 따로 있던 시대였다. 지금은 GPS와 전자해도(ECDIS) 덕분에 내비게이션만 볼 줄 알면 누구나 길을 찾고 위성 인터넷을 즐기지만, 그때는 망원경과 육안, 그리고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


욕망의 분출, 방콕을 향한 항해

주야로 꼬박 5일째 항해를 이어갔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같았다. 배 안의 문화생활이란 육상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약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가족, 애인과의 '단절'이었다.

우리는 스님도 신부님도 아니었지만, 몇 개월씩 여자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고행을 견뎌야 했다. 젊은 남자들의 생리적 욕구는 터지기 일보 직전의 보일러와 같았다. 기껏해야 '야동' 비디오테이프를 마약 거래하듯 몰래 돌려보며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 전부였다. 혈기 왕성한 청춘들에게 그것은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성욕 앞에서는 지식도 체면도 성인군자의 도리도 모두 무너져 내렸다. 그저 여자의 향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느덧 육지가 가까워졌는지, 바람을 타고 묘한 향기가 실려 왔다. 열대 숲의 꽃향기와 달콤한 파인애플 냄새였다. 방콕항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갠지스강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면, 방콕의 짜오프라야강은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는 탐욕의 강이었다.

동양의 베니스이자 방콕의 젖줄. 선배 항해사들은 방콕을 '환락과 유흥의 도시', '섹스와 게이의 도시'라며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선원들은 마치 감옥에서 탈출한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고, 발정 난 짐승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곳엔 우리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널려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3살의 풋풋한 새내기 기관사,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총각이었다.


짜오프라야강의 파노라마

"올 스테이션 스탠바이! 올 스테이션 스탠바이!"

방콕항 입구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선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정박지에 잠시 머물자 도선사가 승선했다. 그는 좁고 복잡한 수로를 따라 우리 배를 안전하게 인도하는 길잡이였다. 예인선 두 척이 양옆에서 찰떡같이 달라붙어 거대한 선체를 보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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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시간여 동안, 강변 위로 아름다운 수상 가옥과 이국적인 열대 식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가슴은 이미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이 화려한 도시에서 3등 기관사의 총각 딱지를 뗄 기회가 올까? 대리점에는 링링의 애틋한 편지와 전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방콕에서의 정박 예정 기간은 일주일. 비라도 내려 작업이 지연된다면 그 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억눌렸던 젊은 혈기가 설렘과 뒤섞여 폭발할 것만 같았다. 1983년 6월의 방콕, 나의 뜨거운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모든 기대와 욕망을 가득 실은 채 장보고호는 부두를 향해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