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효험
1983년의 인도, 캘커타 항을 떠나기 전 마주한 그곳의 마지막 풍경은 '믿음'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블랙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종교는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의학이자 과학, 그리고 삶 그 자체였습니다.
강가로 다시 향했을 때, 모래톱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하얀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그저 파도에 씻겨 온 조개껍데기나 나뭇가지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세월에 마모된 '뼈'들이었습니다. 짐승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는 그 잔해들 사이로, 아직 살점이 붙은 뼈마디를 입에 문 강아지들이 천연덕스럽게 꼬리를 흔들며 지나갔습니다.
힌두교의 수천 년 관습은 엄격하고도 기괴했습니다. 뱀에 물려 죽은 자, 14세 미만의 어린아이, 그리고 새 생명을 품은 임신한 여인은 불길에 태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돌에 묶여 차가운 강물 속으로 수장(水葬)되었습니다.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내려온 이 물이 모든 죄를 씻어내고 병을 낫게 하는 '생명수'이자 '청정 약수'라는 맹목적인 믿음 때문입니다.
실제로 본 갠지스강의 오염도는 처참했습니다. 타 종교인이 한 모금이라도 마셨다간 그 자리에서 병원으로 실려 갈 만큼 독한 물이었지만, 인도인들은 그 물로 몸을 씻고 태연히 목욕을 즐겼습니다. 그것이 수천 년간 쌓인 면역력인지, 아니면 정말 신이 내린 효험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 그들의 눈빛만큼은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인도의 음식은 그 믿음만큼이나 강렬했습니다. 유럽이 왜 그토록 이 땅의 향신료에 미쳤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수백 종의 향신료는 부패를 막는 천연 방부제였고, 청양고추보다 10배는 더 매운 불맛은 식중독을 예방하는 처방전이었습니다. 인도인들이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견디는 비결은 아마도 이 강렬한 향신료와 믿음의 합작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리의 거지들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구걸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떼인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처럼 당당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지을 기회를 주니, 너는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윤회 사상에 기반한 그들의 기적 같은 논리 앞에서 나는 넋을 잃었습니다. 호주머니를 뒤져 간디가 그려진 1루피짜리를 건네자, 순식간에 탁발 행렬처럼 거지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순식간에 1,000루피(당시 가치로 만 원)가 털렸지만, 소매치기나 건달에게 뺏긴 게 아니라 '복을 샀다'고 자위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인도는 맛의 신세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힘들었던 바나나. 원숭이나 먹는 과일인 줄 알았는데, 입안에서 살살 녹는 그 달콤한 향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인도인들에게 바나나는 주식(主食)이었습니다. 튀기고, 삶고, 죽을 끓여 먹는 그 요술 같은 과일을 단돈 100루피에 한 포대 가득 짊어지고 배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께 이 맛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선배 2기사의 조언을 얻어 바나나 껍질을 벗겨 갑판에서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곶감처럼 쫄깃해질 바나나를 상상하며 내 가슴도 함께 익어갔습니다.
그때, 통신실을 통해 링링의 짧은 전보가 날아왔습니다. "다음 기항지 ETA(도착 예정 날짜)를 알려주세요." 그녀가 방콕으로 오려는 걸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우리 '장보고호'는 캘커타 항구가 떠나갈 듯 우렁찬 기적 소리를 내뿜으며 인도의 비릿한 연기를 뒤로하고 출항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태국 방콕. 그리움이 파도를 타고 뱃머리를 때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