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삶과 죽음의 공포가 공존하는땅

캘커타항구 입항기

by최경열

1983년 6월, 인도 캘커타의 공기는 눅눅한 습기와 정체 모를 향신료, 그리고 삶의 비린내가 뒤섞여 숨이 막힐 듯 무거웠습니다. 80년대 해상 통신이란 고작 모스 부호의 날카로운 기계음과 느릿한 텔렉스가 전부였던 시절. 인터넷은커녕 고국의 소식조차 적도 너머 신기루처럼 아득했습니다.

해기사라는 '꿈의 온라인 게임' 이면에는 **'단절'**이라는 치명적인 대가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생이별한 채 기약 없는 부정기선에 몸을 싣는 삶. 결혼을 앞둔 청춘들에게 바다는 견우와 직녀조차 절망할 거대한 장벽이자 유배지였습니다.


문자의 암호학, 그리고 3분의 영생

연인 링링이 보낸 영어 필기체 편지는 한 편의 암호문 같았습니다. 며칠 밤낮을 낡은 영한사전에 매달려 문장을 쪼개고 단어를 파헤친 끝에야 비로소 그녀의 진심에 가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거대한 태평양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우리 마음의 장애물이 될 수는 없어요."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올랐습니다. 밤새 꾹꾹 눌러쓴 답장을 품에 안고 캘커타 시내 우체국으로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거액의 통행료를 지불하고 허락된 시간은 단 '3분'. 수화기 너머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뚫고 들려오는 그녀의 가녀린 숨소리와 목소리는, 지난 6개월간 쌓인 고독의 먼지를 단숨에 씻어내는 성수(聖水)와 같았습니다. 그 찰나의 교신은 다음 항구까지 버티게 할 유일한 생명줄이었습니다.


신과 짐승, 문명과 야만의 카오스

항구를 벗어나 마주한 인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현실적인 풍경이었습니다. 5,000년 인더스 문명의 찬란한 영광과 현대의 처절한 남루함이 기괴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황금빛 사원 바로 옆에는 거대한 쓰레기 산이 솟아 있고, 깊은 삼매에 든 수행자 곁에는 뼈만 남은 노숙자가 죽음 같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개, 원숭이, 말, 그리고 신성시되는 소들이 인간과 뒤엉켜 거대한 '실사판 동물의 왕국'을 연출했습니다. 좁은 골목에선 예고 없이 '소들의 전쟁'이 벌어졌고, 나는 본의 아니게 붉은 천 대신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흔드는 투우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인도의 소들은 이방인의 냄새를 귀신같이 알아챘습니다. 한 녀석이 콧김을 뿜으며 돌진해 왔지만, 나는 대한민국 시골 들판에서 소와 함께 뒹굴며 자란 놈입니다. 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기(氣)를 제압한 뒤, 뿔 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녀석은 금세 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숙였습니다. 캘커타의 먼지 자욱한 골목에서, 20대 조선의 청년 기관사와 인도의 신령한 소는 그렇게 기묘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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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타오르는 육신과 구원의 강물

마침내 갠지스 강가에 닿았을 때,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 자욱한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이 보양식을 만든다며 개를 잡을 때 나던 고기 타는 냄새와 소름 끼치도록 흡사했습니다. 이끌리듯 다가간 그곳에서 나는 전신이 마비되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불길 속에서 이글거리며 타들어 가는 것은 짐승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육신'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죽음은 은폐해야 할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전역에서 모여든 병자와 노인들은 이 강물에 몸을 맡기는 것을 생애 마지막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강물에 뿌려진 뼛가루가 해탈의 문을 여는 티켓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더 나은 내생으로 떠나는 성대한 '이민 축제'였습니다. 땔감이 부족해 반쯤 탄 시신이 흙탕물을 따라 둥둥 떠내려가는 광경은 참혹했지만, 인도인들에게 그것은 그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섭리일 뿐이었습니다.


'사티'의 비명, 붉은 노을에 새겨진 낙인

해 질 녘, 강가의 소란을 뚫고 고막을 찢는 듯한 여인의 절규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힌 곳에는 거칠게 타오르는 장작더미가 있었습니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남편의 시신 곁으로, 산 채로 끌려가는 한 여인...

그것은 인도 역사의 가장 어두운 망령, '사티(Sati)'라 불리는 잔혹한 악습이었습니다. 법으로는 이미 금지된 지 오래였으나, 인습의 굴레가 깊은 이 땅의 어느 구석에선 여전히 유령처럼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불길 속으로 던져지는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과 타오르는 불꽃이 캘커타의 핏빛 노을과 겹쳐지며 장관이자 비극인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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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경계 없이 뒤섞여 흐르는 갠지스. 그 비릿한 연기 너머로 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렬하고도 잔혹했던 인도의 첫 상륙은, 20대 청년 기관사의 심장 한복판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뜨거운 낙인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