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말라카의 유령, 부산1호 습격

K일당의 습격

by최경열

우리배 장보고 이야기가 아니다. 박동우 2등기관사가 직접 당한 이야기다. 부산1호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항해등만 깜빡거리며 인도로 향하고 있었다. 6,000 TEU 컨테이너 선박인 이 거대한 배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새벽 3시, 미드워치(00시부터 04시) 당직 시간이 깊어가고 있었다. 2등 기관사 박동우는 기관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혹시 모를 이상 징후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 효정씨뿐이었다. 효정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지갑 속에서 꺼내 보며, 그는 팍팍한 선상 생활의 유일한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편, 해적 K일당은 부산1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대형 선박들 사이에서 어선으로 위장한 K일당은 레이다에 잡히지 않기 위해 FRP로 특수 코팅까지 한 상태였다. 레이다 화면에는 오직 미세한 티끌처럼 나타날 뿐이었다. 벌써 5시간째, K일당은 부산1호와 2~3해리의 거리를 두고 끈질기게 추격하고 있었다. 부산1호가 속력을 높이자 엔진 부하가 올라가며 검은 연기가 먹구름처럼 피어올랐고, 하얀 파도가 선미 뒤로 흩어졌다. 하늘에는 오직 별빛만이 반짝일 뿐이었다.

K일당은 45노트(80km)의 전속력으로 부산1호 선미에 바짝 붙었다. 굉음 같은 엔진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AK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K일당은 히빙라인을 던져 선박에 접근한 후, 순식간에 선미 데크에 올라탔다. 가장 먼저 올라간 사람은 두목이자 '점퍼'라 불리는 K였다. 점퍼는 성공 시 가장 많은 금액을 배분받지만, 그만큼 가장 위험한 역할이었다. 점퍼는 이미 부산1호의 선내 구조를 꿰뚫고 있었다.

선내의 모든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만, 점퍼 K는 비밀의 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산타클로스처럼 연돌 상부(Funnel Top)의 수직 계단을 타고 쏜살같이 올라갔다. 기관실로 통하는 비상문은 자동으로 잠기지만, 점퍼 K는 쉽게 열 수 있었다. K일당 4명은 비상문을 통해 선내로 진입한 후 수직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브리지를 기습했다. 브리지에는 야간 당직 중이던 2 항사와 보조 타수뿐이었다. K일당은 순식간에 그들을 무기로 위협하며 반항을 못 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2 항사의 머리에 AK 자동 소총 총구를 겨누고 모든 방송과 무전을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총구에서 불이 뿜어질 상황이었다. 2 항사와 보조 타수는 공포에 떨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부산1호는 육상에서 2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구조 헬기를 요청해도 1시간 이상 소요되고, 해군이 도착하려면 몇 시간이 더 필요했다. 부산1호는 마치 외딴섬이나 깊은 산속의 고요한 마을처럼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80년대 해적은 조직화되지 않아 선박 납치까지는 감행하지 못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수십억 원 가치의 화물이 가득 찼지만, 해적들에게는 이를 처리할 능력도 장비도 없었다. 소말리아 해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K일당은 마스트키를 찾아내 금고가 있는 선장실에 침입했다. 선장은 배에서는VIP 대우를 받는 막강한 권한이 있지만, 해적에게는 한낱 고객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국제적인 해적 퇴치 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선장은 속수무바카라이었다. K일당은 마스트키를 이용해 방 하나하나를 자기 방처럼 드나들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흉기나 공포탄으로 위협했다.

2등 기관사 박동우는 말라카 해협을 벗어난 안도감에 잠자리에 누우려던 순간, 총소리를 들었다. 직감적으로 해적의 침입을 알아차린 그는 먼저 현금과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바카라상 위에 얹어 놓고 손을 들었다. 지갑 속에 있던 효정씨의 사진과 함께 효정씨가 선물해 준 스위스산 시계, 금목걸이, 선글라스가 바카라상 위에 놓였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괴한 2명이 박동우의 방에 침입하여 칼로 위협했다. 박동우는 오줌이 찔끔 나올 정도로 겁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목숨만 살려주면 다 내주겠다는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괴한들은 바카라상 위에 있는 현금을 순식간에 털어갔다. 효정씨의 사진을 보더니 힐끗 웃는 괴한들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효정씨의 선물은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그대로 두었다.

K일당은 삽시간에 선박 전체를 샅샅이 훑어갔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칼날처럼 예리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해적들이 떠난 후 부산1호는 즉시 비상 소집을 했다. 식당(Messroom)에 모여 피해 상황을 조사한 결과, 현금과 금붙이 등 약 2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소말리아 해적처럼 선박을 납치하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선장은 본사에 텔렉스를 보내 상황을 보고했다. 다음 날 저녁 9시 뉴스에는 "한국 화물선으로 추정되는 부산1호, 말라카 해협에서 해적에 피습"이라는 소식이 톱 뉴스로 보도되었다.

(다음 편에는 소말리아 해적 이야기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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