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변산반도 시한폭탄

홍당무 소년의 귀환

by최경열

단주 4일 차가 밝았다. 낮에는 멀쩡하다. 세상 진지한 지성인처럼 굴다가, 해만 뉘엿뉘엿 지면 뇌 구조가 바뀐다. 이상하게 나는 배가 고프면 밥이 생각나야 하는데, 술이 먼저 땡긴다. 중독자들의 공통된 저녁 루틴, '술시(酒時)'의 저주다.

전략을 바꿨다. 저녁 식사 테이블 앞에서 술 대신 밥부터 입에 욱여넣는다. 음식으로 위장을 먼저 채우면 일단 50%는 성공이다. 배가 부르면 술 생각이 40% 정도는 사그라진다. 그렇게 밥과 술의 유혹을 이겨내고 하루를 마치려 하면, 마지막 복병이 기다린다. '불면증'. 침대에서 뒤척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뇌는 다시 술을 속삭인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심리전이다.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겨우 4일째, 오늘도 버틴다.


흑역사의 소환: 양조장 심부름과 사춘기의 자존심

이 긴 단주의 밤, 과거의 흑역사가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 감성이 예민하게 넘쳐나던 시절이다. 우리 집에서 양조장까지는 4km. 농번기가 되면 품앗이 일꾼들이 마실 술을 미리 받아오는 게 내 임무였다. 아버지는 내게 차비까지 쥐여주며, 하굣길에 변산 양조장을 들려 20리터짜리 하얀 플라스틱 막걸리 말통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중2병이 도진 소년에게 20리터 막걸리 말통은 너무나 무겁고, 무엇보다 쪽팔렸다. 이걸 들고 하굣길 버스를 타야 했다. 평상시 걸어 다녔던 하굣길이었다. 변산 주조장의 막걸리는 당시 탄산이 강해 청량감이 으뜸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게 내 인생의 '시한폭탄'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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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버스 안의 하얀 폭발, 홍당무가 된 소년

버스 맨 뒤 자리에 앉았는데, 하필 앞자리에 동급생 여학생들이 앉아 깔깔거리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은 막걸리 말통을 들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비포장도로의 잔혹한 시련이 시작되었다. "덜컹- 덜컹!" 자갈길을 달릴 때마다 막걸리 병은 신나게 셰이킹(shaking)되고 있었다.

마침내 사건이 터졌다.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한 뚜껑이 "뻥!" 소리와 함께 천장으로 튕겨 나갔다. 하얀 막걸리 폭포가 버스 안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왔다. 나의 교복은 순식간에 시큼한 막걸리로 푹 젖었다. 내 사춘기의 자존심도 함께 젖었다.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다, 홍당무가 된 내 꼴을 보고 "깔깔깔!" 웃음보를 터뜨렸다. 시큼털털한 효모 냄새를 풍기며 내릴 때까지, 그 비포장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긴 길이었다. 도저히 쪽팔려서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 막걸리 통을 메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집까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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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의 비밀: 생물 효모의 습격

훗날 알게 되었지만, 막걸리의 탄산은 효모의 '자연 발효' 과정에서 생긴다. 쌀의 전분이 누룩에 의해 당분으로 바뀌고, 효모가 이 당분을 먹어 치우면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 특히 70년대 생막걸리는 병 안에서도 발효가 계속되는 '생물'이었다. 비포장도로의 진동은 액체 속에 녹아 있던 이산화탄소를 순식간에 기체로 분리해 내뿜게 만드는 최고의 기폭제였던 셈이다. 그날 이후, 나는 지게를 지고 막걸리를 옮길지언정 절대로 말통으로 차를 타지 않았다. 그 수모는 내게 술에 대한 환상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술에 대한 환상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다니! 그날의 쪽팔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 '술'에 젖어 살았던 수십 년의 세월이, 아내와 가족들 앞에서 나를 더 심각한 쪽팔림 속에 가두고 있었다.

단주 4일 차, 나는 오늘도 버틴다. 버스 안에서 터졌던 막걸리 폭포보다 더 강력한 유혹의 폭발을 막기 위해, 나는 스스로 내 뇌에 무알코올이라는 단단한 뚜껑을 닫는다. 여러분도 오늘 밤, 자신만의 뇌 뚜껑을 단단히 잠그시고 승리하시길 바란다. 이 치열한 싸움의 결말은 결국 '건강'이라는 달콤한 열매로 돌아올 것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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