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확신편향의 함정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감독보다 전술을 더 잘 짜는 관객이 너무 많다.
해설자는 오죽할까.
“왜 그때 투수를 안 바꿨어?”
“거기서 왜 번트를 댔어?”
“그냥 강공 갔어 야지.”
“그 타자를 왜 믿었냐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모든 것이 너무 쉽고 명확하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고,
실패한 장면은 박제된 듯 선명하며,
우리는 이미 정답지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라운드 위의 감독은 결과가 나오기 전,
가장 눈이 멀기 쉬운 '현재'의 시간 속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 순간의 투수 컨디션,
타자의 타격감,
불펜의 과부하 상황,
내일 경기 일정,
선수의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독만의 직감까지.
감독은 그 수많은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단 하나의 선택을 내려야 했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고 나면 사람들은 그 치열했던 머리싸움과 불안을 모두 지워버린 채 '결과'라는 단면만 기억한다.
이겼으면 명장이고,
졌으면 당장 떠나야 할 머리 나쁜 사람이 된다.
최소한 오늘은 그렇다.
이런 비정함은 비단 야구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제 산 주식이 하한가를 쳤을 때,
큰마음 먹고 옮긴 회사가 기대와 달랐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관객이 되어 묻는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이럴 줄 몰랐어?"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사후확신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는 '후견지명(後見之明)'이다.
일이 벌어진 뒤
"내 그럴 줄 알았지"
라고 말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기억의 왜곡에 가깝다.
인간은 결과를 알고 나면 과거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한다.
원래는 안개 뿐이었던 불확실한 선택을,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길처럼 기억을 재조립한다.
리더의 자리가 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결정은 '확신'보다 '확률'의 영역에 더 가깝다.
리더는 늘 불완전한 정보 앞에서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포기'하는 아픔을 동반한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리더들이 잘못된 선택 그 자체보다
결과 이후 쏟아지는 타인의 쉬운 해석과
그보다 더 가혹한 '자기비난' 속에서 스스로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걸까.”
“그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나.”
“왜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에 다시 선다 해도,
당시의 당신은 그 정보 안에서 최선을 다해
가장 나은 확률에 기대어 다시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과거를 평가하지만,
리더는 미래를 모르는 채,
그 이전의 순간에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숙명이자,
어쩌면 삶의 본질이다.
오늘도 당신은 선택의 결과를 보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당신은 오답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저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포기하며
최선의 확률을 던졌을 뿐이다.
그러니 결과를 보고 난 뒤의 쉬운 목소리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한다.
그라운드에서 수없이 많은 ‘아웃’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선택의 무게를 얼마큼 이해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