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같은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정리되는 순간은 의외로 조용하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피로감으로 시작된다.
예전에는 언제라도 달려가 만나던 길이,
어느 날부터는 괜히 멀게 느껴진다.
전화가 오면 반갑기 보다 피곤해지고,
약속을 잡기가 일처럼 버거워진다.
전에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좋아했던 말투와 습관들이
이상하게 하나씩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불편했던 장면들이 자꾸 떠오르며
마음속 블랙 리스트가 길게 저장된다.
관계는 사랑이 부족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바라고,
기대하고,
참고,
억누르던 마음들이 조금씩 지쳐가다가,
관계의 피로가
남아있던 사랑마저 덮어버려 끝나는 것 같다.
언제나 마음이 떠나는 사람이 먼저 안다.
미안해 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리 보고 싶지가 않다.
남겨지는 사람은 그 사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왜 갑자기 예전 같지 않은지,
왜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는지.
그래서 더 애쓴다.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
추억 이야기를 꺼내고,
여행을 가자고 하고,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멀어진 사람에게
그런 노력들은 사랑이 아니라 피로로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내가 더 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구나.
상대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떠나 있었구나.
그 순간부터 그는
억울함과 체념 사이에서 오래 흔들린다.
왜 나는 아직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은 저렇게 평온할까.
왜 나는 아직 붙잡고 싶은데
저 사람은 점점 더 멀어질까.
관계의 끝이 힘든 이유는
누가 더 많이 사랑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같은 시간에 끝나지 않는다.
한쪽은 벌써 한겨울인데,
다른 한쪽은 아직 한참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듣고도
서로 전혀 다른 계절 속에 서 있게 된다.
그래서 관계의 마지막은
마음처럼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 잔인한 시간 차는
연인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재임을 기다리는 임원의 눈빛에서도,
선발을 위해 모든 것을 갈아 넣었던 선수의 표정에서도,
자식을 기다리던 부모의 체념에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듣는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겨지는 사람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상대는 이미 오래전에
나 없이,
문제없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해 두었다는 것을.
관계 정리의 마지막 예의는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상대가 떠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표시 내지 않고,
축복하며,
나 역시 그 사람이 필요 없어지도록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이런 말로
스스로를 조용히 설득하는 것..
“안 보고 싶냐?”
“나도 그렇다.”
(지난 코칭 대화 속에서 오래 마음에 남았던 감정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일부 내용은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