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 많으니 탈 많을까 하노라

나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7

by삐재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어릴 적 부모님께서

생각 없이 말을 많이 하지 말라며 자주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런데 어린 나는 이 말을

"말로써 말 많으니 탈 많을까 하노라."

로 외우고 다녔다.


요즘 대기업의 핵심인재 팀장 한 명을 코칭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의 말이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말이 빨라진 만큼 말의 양도 함께 늘어났다.

하나를 설명하다 둘을 말하고,

둘을 말하다 셋과 넷을 꺼낸다.


자꾸 옆으로 샐수록, 해야 할 말은 더 많아진다.

질문도 안 받고, 더 빨리 말해도,

아직 하지 못한 말은 점점 더 많아진다.


며칠 관찰하다 보니
그의 말에도 일정한 패턴이 보였다.


그는 늘 배경부터 설명한다.

이유를 설명한다.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갑자기 자신의 경험담이 나온다.

혼자 웃는다.

아직 본론은 시작도 안 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열심히 설명해도

상대는 자꾸 핵심을 놓친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그러면 그는 '내 설명이 부족했구나.'

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분석 결과는 간단했다.


팀장의 설명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설명이 너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의 지식과,

이해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이해력이 아니라 집중력이었다.

결론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모두 지쳐 있었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라고 설명한다.

우리들 말로는 용량초과다. 사람의 작업기억은 생각보다 작다.

귀는 계속 들을 수 있지만, 머리는 한꺼번에 모든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


정보가 일정 수준 넘게 유입되면 이해는 오히려 줄어든다.

말이 많아질수록 메시지의 핵심이 사라진다는 과학적 근거이다.




우리들 회사에는 꼭 이런 부장님이 한 분 계신다.

신년 목표는 늘 하나다.

"직원들과 잘 지내기."


그래서 회의만 시작하면

십 년 전 이야기,

경쟁사 이야기,

사장님 이야기,

본인의 성공 스토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튼 알아서 잘해."


직원들은 회의가 끝난 뒤

조용히 묻는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는 거죠?"


부장님의 말은 넘쳐났지만

메시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잘 지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렸다.



말이 많아지는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혹시 오해할까 봐.

혹시 실수할까 봐.

혹시 내가 부족해 보일까 봐.


심리적으로 불안할수록 말을 줄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 안도한다.

살 것 같다고 한다. 할 말을 다해야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느낀다.


재미있는 것은

리더십에서도, 협상에서도, 코칭에서도

같은 원칙을 말한다.


Less is More.
적을수록 핵심만 남는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말만 남기는 사람이
오히려 더 명료하게 전달한다.


좋은 협상가는 침묵을 견딜 줄 알고,

좋은 코치는 설명보다 질문을 먼저 한다.

좋은 리더는 한 문장으로도 사람을 움직인다.


그래서 요즘은 부쩍 말이 많아진 동료를 보면
예전처럼 답답해하지 않는다. 대신 생각한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어릴 적 부모님 말씀이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말로써 말 많으니 탈 많을까 하노라."


말이 많아서 탈이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이 말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고,

멈추지 못한 말이 결국 탈을 만들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말을 더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언제 말을 멈춰야 하는지 아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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