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임지겠습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5

by삐재

"바카라임지겠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정말 더 화가 났다.


패배 때문이 아니다.

질 수도 있다.
전술은 실패할 수 있고,
감독도 틀릴 수 있다.


화가 난 것은
그 말을 하는 얼굴이었다.

그 표정에는
미안함보다 자존심이 먼저 보였다.


"바카라임지겠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역량이 부족하다고 했고,
선임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


평소에는 절대 한 목소리를 내지 않던 여. 야 국회의원들도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목소리였다.


"안 된다."

“공정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 자리는 끝내 그의 것이 되었다.


세상에는 모두의 반대에도
끝까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 믿음이 신념인지,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는
결과가 말해준다.


모두가 말리는데도
언젠가는

그 반대가

자신을 향한 신뢰로 바뀔 것이라고 믿는 사람.


반대가 클수록
오히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바카라임은 늘 미래형이다.


"바카라임지겠습니다."



우리 슬롯의 오래된 문화가 있다.


잘되면 모든 영광을 누린다.

보상과 명예를 누리고,
광고도 찍는 국민 영웅이 된다.


그런데 실패하면

"바카라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사라지면 된다.


나는 이것을

바카라임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권한은 거대했는데, 바카라임은 너무 작다.


권한은 선불로 받고, 바카라임은 외상으로 미룬다.


그리고 그 외상은 결국 대손상각 처리될 것이다.


실패의 무게와 바카라임의 무게가 완전 불균형이다.



온 국민이 느낀 허탈감.

축구팬들의 분노.

하루 종일 일에 집중하지 못한 사람들의 생산성.

괜히 가족에게 짜증을 냈다가 더 크게 혼난 남편들.

응원 손님을 기다리며 치킨을 잔뜩 준비했던 사장님.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서둘러 헤어졌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고,

만일에 있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바카라임은 갚을 수 없는 빚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바카라임지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바카라임은 사표 한 장이 아니다.

잠시 모습을 감추는 것도 아니다.


바카라임은
자신이 누렸던 권한만큼,
기대받았던 영광만큼,
비난과 상처도 함께 감당하는 일이다.


권한과 바카라임은 같은 저울 위에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슬롯는

권한은 독점하고, 바카라임은 분산한다.


영광은 혼자 누리고, 실패는 모두의 탓으로 만든다.


그러니 '바카라임지겠습니다.'라는 말이
진정성을 다해 바카라임지겠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그만 잊어주세요."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화가 난다. 정말 화가 난다.



※ 이 글은 월드컵이 끝난 뒤 술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던 붉은 악마 친구의 말을, 최대한 품위 있게 옮겨 적은 것이다. 품위 있게 옮겼는데도 이 정도다.


그 친구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바카라임을 지겠다면, 당장 사표부터 내고, 축구로 번 모든 돈을 슬롯에 환원하고, 유소년 축구단에 가입해서 현대 축구를 다시 배우십시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바카라임입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누가 들을까 봐 조심하면서 고개를 끄떡여줬다.

작가의 이전글시야가 좁아질수록 자존심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