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가 좁아질수록 자존심은 커진다

인간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1

by삐재

싱가포르에서는 해발 164m 부킷 티마 힐이 나라 전체에서 가장 높은 지대다.

그곳에 가면 전망도 좋고, 바람도 잘 불어 모기도 별로 없다.

간척지 지대와는 습도가 다르다. 살아보면 안다.


네덜란드에서는 해발 200m 언덕도 높으신 곳이 된다.

그렇게 높은 곳에 세워진 리조트, Hoog Vaals라는 휴양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참 좋아라 놀러 왔다. 모두가 마음으로 고지대의 선선함을 즐겼다.


한번은 스위스 사람이 내게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다.

“왜 남산을 산이라고 부릅니까?”

저건 산이 아니라 언덕, 그러니까 오름 정도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들에게 남산은 언덕 중에서도 참 낮은 언덕일 수 있다.


그래 봤자 스위스가 자랑하는 알프스도 히말라야 앞에 서면 껌이다.

에베레스트(해발 8,849m)는 몽블랑(해발 4,808m)의 하얀 머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

휴가 나온 군인 삼촌이 초등학생 조카를 바라보는 수준이다.


우리 인간에게 에베레스트(8.8km)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은 산이다.

마리아나 해구(11km)는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바다다.


그런데 이들을 지구 반지름(6,371km)에 가져다 붙이면

둘 다 머리카락 하나 정도 크기의 작은 주름이다.

부산까지 왕복하는 거리 앞에서

버스 한 정거장 더 걸었다고 말하는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렇게 높고,
무엇이 그렇게 깊은가.


참 이상한 것은,


이런 계산을 즐기던 나조차
회사만 가면 금세 높은 산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히말라야라고 믿기 시작했다.

남산을 언덕으로 보았고,

몽블랑도 내려다보았다.


참 우습다.

지구 반지름 앞에서는 에베레스트도 작은 주름이라고 말하던 사람이,

회사 안에서는 직함 하나, 보고 라인 하나에 금세 높아지고 낮아졌다.


그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아니, 나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작은 언덕 위에 선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언덕을 보지 못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히말라야라고 믿기 시작한다.

작은 연못의 송사리는 자신을 고래라고 착각한다.

작은 조직 안에서 몇 번 인정받은 사람은

세상 밖에서도 자신의 비교우위가 통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은 참 넓고도 깊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며
경외하며 어지러워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높고 낮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겸손은 인격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더 큰 산을 본 적이 있는가.

자신보다 더 넓은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그 경험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뭐란 말인가.

내 맘이 너무 좁아진 것인가.


어쩌면
시야가 좁아질수록
자존심만 커지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렇게 크고,
나는 이렇게 작은데.


그 사실을

계속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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