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2. 같은 몸에 살았던 영혼들

- 나는 내 몸을 잠시 빌려 살고 있다.

by삐재

오늘은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조금 생경한 생각을 해본다.


완전 내 편인 줄 알았던 내 몸이 이젠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 몸은
밤을 새워도,
조금 아파도,
늘 잘 버텨주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같은 거리를 걸어도
한없이 멀게 느껴지고,


수시로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해도
체온 조절조차 어려워진다.


그러다가 문득
목동의 감나무집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먼저 살다 갔고,
나는 잠시 머물렀고,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살았다.


생각해보면
몸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내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동차는 어떤가.


폐차를 결정하면
아주 담담하게 번호판을 떼고,
쓸 만한 부품은 챙기고,
남은 몸체는 녹여서 처리한다.


내게 편리함을 주고,
자부심도 주고,
철저하게 가족의 생명까지 지켜주었는데도
내 차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서운함 정도로 마무리 될 수 있다.


그러면 내 몸은 어떨까.


내 사랑도,
내 욕심도,
내 허세도,


수십 년 동안 대신 수행해준 내 몸인데.


밤을 버텨주고,
슬픔도 견디고,
누군가를 안아주는 일까지 대신 해주었는데.


아프다고,
고장났다고


내 몸만 덜렁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가당하기는 한 말인가?


생각만으로도 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이어진다.


내 생각과 감정은
그 후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래전부터 자라온 내 슬픔과 그리움은
어디로 가야 하나.


만약 정말
생각과 감정이
몸을 옮겨 다니는 것이라면.


지금 내 몸의 차례가 끝나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갈 곳이 없다면?


문득 어릴 적 하던 의자잡기 놀이가 떠오른다.


“둥글게 둥글게, 빙글 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

“1명!!”


음악이 멈추면
사람들은 빈 의자를 향해 달려간다.


혹시 인간도
그런 식으로
새로운 몸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세상에는
가끔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차르트는
여섯 살도 되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했다.


송소희는
다섯 살 무렵부터
오래된 국악 가락을 자연스럽게 불렀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천재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은
아주 오래전 누군가가 간절하게 품었던 감정이
돌고 돌아
잠시 그 천재 신동 안에 머무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유 없이 그리운 풍경이 있고,
처음 가보는데 낯설지 않은 장소가 있고,
처음 만났는데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 같은 경우도 있다.


설명은 잘 안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인연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영화 Interstellar에서는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서도
딸을 향한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끝내 도착한다.


그 공상과학 우주 영화는 결국
“마음이 몸의 시간보다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들을 남기고 간다.


말 한마디도 남고,
표정 하나도 남고,
사랑도 상처도
어딘가에는 남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시간을 건너
다시 누군가의 안으로 들어간다.


마치 오래된 집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살아도

이전 사람의 흔적이 어딘가 남아 있듯이.


내가 살았던 감나무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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