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도 결국 선택과 포기의 결과일까
나는 예전에
목동의 1층 아파트에 살았었다.
1층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제법 넓은 베란다 정원이 있었고,
이팝나무 담장이 아늑하게 둘러쳐져 있었고,
그 안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앞이 탁 트여
볕도 참 잘 들었다.
든든한 감나무를 보고 있으면
괜히 감이 주렁주렁 달린 풍경까지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해에는
감이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말했다.
“아파트로 옮겨 심으면 원래 몸살 앓아요.”
진작 말하지
꼭 다 지나가서 이야기한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저기 물어가며
감나무에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였다.
그리고 괜히 부담 줄까 봐
감나무 앞에서 일부러 말했다.
“감이 안 열려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래서였을까.
몇 년째 감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잎만 무성했다.
아주 건강하게.
그러다가 1999년,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집을 팔지 않고
전세를 주고 가기로 했다.
그 집에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감나무는 이별이 서운했나 보다.
그해 5월부터 서둘러
꽃이 피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두면
은은한 향이 들어왔다.
그래도 설마 했다.
그런데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자
감이 정말 주렁주렁 열렸다.
동네 사람들이 저녁 마실 나오면
우리 집 구경을 올 정도였다.
11월 한국을 떠날 때까지
우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감을 한두 개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세입자가 나가고
우리는 결국 그 집을 팔았다.
집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
돈이 조금 모자란다며
조금만 깎아달라고 간청하던
착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그 감나무 집의 새 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가격을 조금 깎아주며 말했다.
“우리 대신 감나무 잘 돌봐 주세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가끔 그 집이 생각난다.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만은 아니다.
비 오는 날 창문을 열어두면
감나무 꽃향기에 섞여 나던
그 눅눅한 비 냄새가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그 집에는 이미
여러 가족이 살다 갔을 것이다.
그들도 감나무를 좋아했을까.
누군가는 거기서 아이를 키웠을 것이고,
누군가는 감나무에게
퇴직 고민을 얘기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화장실 거울을 보고,
같은 방에 누워,
같은 감나무를 바라보며 살았다.
그런데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았지만
같은 시간을 살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인연이라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이어지는 줄 알았다.
좋은 사람이면 오래 가는 줄 알았고,
서로 노력하면 계속 만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인연에도 시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서로 머무는 시간이 다르면
결국 스쳐 지나간다.
반대로
오랫동안 같은 시간을 견뎌준 사람은
깊게 남는다.
그래서 이제는
아직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짠한 마음이 든다.
수많은 선택과 포기 사이를 지나
아직 같은 시간 안에 있다는 것이
참 고맙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것은
운명처럼 만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견뎌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