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새벽, 병원에서 다급한 연락이 걸려 왔다. 은정에게 갑작스러운 뇌출혈이 발생해 상태가 매우 위중하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은 제대로 옷을 챙겨 입을 겨를도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 은정은 다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담당 교수는 뇌 곳곳에 출혈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뇌압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오랜 투병으로 여러 장기의 기능이 크게 약해져 있어 수술을 견디기 어렵고, 수술을 하더라도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가족들의 얼굴은 굳어 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은정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회복을 기대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담당 교수는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치료는 사실상 한계에 이르렀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은정이 고통 없이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가족이 함께 숙고해야 할 문제였다.
의사는 충분히 상의할 시간을 주겠다며 자리를 비켰다. 보호자 상담실에 남겨진 가족들은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동안 은정은 수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뎌 왔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그것이 은정이 살고 싶어서 버틴 것인지, 자신들을 두고 떠나지 못해 견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살려 달라는 마음과 이제는 편히 쉬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서로 뒤엉켜,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오랜 시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지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은정을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기계에 의지한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결국 은정에게 또 다른 고통을 견디게 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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