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누워 있는 별이를 바라볼 때마다 한길은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별이가 아플 때마다 한길은 아이엄마의 빈자리를 먼저 떠올렸다. 아이의 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 딸에게 엄마 없는 시간을 견디게 했다는 미안함이 자꾸만 마음을 파고들었다.
별이는 여름이면 유난히 땀을 많이 흘렸고, 평소에도 배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한길은 아이에게 좋다는 보약을 먹여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알려준 여러 민간요법을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별이의 잔병치레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별이 곁에는 언제나 해나가 있었다. 동생과 수다를 떨며 웃다가도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한길과 간호사의 표정부터 살폈다. 해나가 특별히 어른스러운 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주변의 분위기와 어른들의 눈치를 빠르게 살피는 습관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해나는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한길은 딸에게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해나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얼음벽이 세워진 것 같았다. 말을 건네도 짧은 대답만 돌아오면 무엇을 더 물어야 할지 몰라 아이 곁을 지나치곤 했다.
입원 치료를 받은 별이는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더는 열이 오르지 않았고, 핼쑥했던 얼굴에도 살구색 생기가 돌아왔다. 기운이 생기자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도 다시 나타났다.
막내인 별이는 붙임성이 좋았다. 몸이 아픈 중에도 엉뚱한 말을 해 한길을 웃게 만들었고, 간호사가 들어오면 언제 주사를 빼줄 것이냐며 능청스럽게 흥정을 벌였다. 미영을 잃은 뒤 웃는 일조차 죄스럽게 느꼈던 한길에게 별이는 뜻밖의 순간마다 웃음을 되찾아주는 아이였다.
퇴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한길은 병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1층 접수창구에 김은정이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간호사의 말이었다.
‘은정 씨?’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이름을 다시 확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한길은 해나에게 별이 곁에 잠깐 있어달라고 부탁하고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접수창구 옆에 은정이 서 있었다. 며칠 전보다 얼굴이 조금 야위어 보이기도 하고 창백한 기색도 남아 있었다.
별이의 병실로 향하는 동안 한길은 은정에게 입원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정은 자신도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고 말하며, 퇴원 후 아이들이 궁금해 집에 들렀다가 근처 이웃을 만나, 그 사람에게 별이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길에게는 은정이 입원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보다, 별이를 걱정해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은정은 한길의 메마른 일상에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그 마음을 어떤 감정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은정을 보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 곁에서, 한길의 얼굴에도 자신도 모르는 미소가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한길은 별이가 열이 높아 입원했지만 다행히 상태가 좋아져 다음 날 퇴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은정의 안색을 살피며 몸은 괜찮은지 물었다. 은정은 잠깐 병원 신세를 졌지만 이제 괜찮다며 자세한 이야기는 피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별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은정을 불렀고, 해나는 얼른 의자를 가져와 침대 사이에 놓았다.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은정을 자신들 가운데 앉혔다.
별이는 병원 밥이 맛없었다는 이야기와 주사를 맞을 때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해나는 그런 동생의 말을 정정해 주다가도 은정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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