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아, 왜 사과는 안 먹니?

신정애 선생님의 따뜻한 시집

by김별

신정애 작가님의 따끈한 시집을 받아 펼쳤다.



40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시고 지난 8월 말 퇴임하신 작가님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시로 엮었다. 나 역시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마치고 몇 해 전 8월 말 퇴임한 교사라서인지, 바카라장을 넘기는 내내 동병상련의 마음이 일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지내면서 어른이면서 동시에 어린 마음을 갖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제자들이 매일 말과 눈빛과 행동으로 자신을 어려지도록 도와주었기에, 아이들과 함께 시를 쓴 셈이라고 말한다.


소심한 성격 탓에 6학년까지 발표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아이가 선생님이 되어서는 스피치 학원까지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침마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교실에 들어가 빛나는 아이들의 두 눈을 보면 가슴에 불이 탁 켜진다고 한다.


교사가 늘 자신이 맡은 학년의 아이들 마음과 눈높이에 맞추려 애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1학년에서 6학년으로 학년이 바뀔 때마다 그 아이들을 따라간다. 아이들이 달라지면 선생님도 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마음의 키를 다시 조절한다.


시집을 펼치며 처음 만나는 문장이다.


“아이들보다 더 많이 웃는 선생님이고 싶었다.”


나 역시 현장 교사였지만 중등학교에서 근무해서인지, 3월 한 달은 절대 웃지 말자는 것이 우리 교사들 사이의 암묵적인 다짐이었다. 제발 3월 한 달 동안 규율을 잘 잡고 체계를 세워 교실을 제대로 통제해야 일 년 동안 수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신정애 선생님의 교실은 그야말로 다른 풍경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교실이 떠나갈 듯 커지면 때로는 얕은 선생님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그러나 그 한숨마저 웃음 속에 녹아 있다.


시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모범생 민수도 웃고 조용한 수희도 웃고 온 교실이 다 웃고 이렇게 웃기는데’ 왜 난 화가 날까 같이 웃으면 좋을 텐데 한다.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웃고 뛰고 노는 것만으로도 시가 된다.

손가락을 들어 ㄱㄴ을 따라 쓰다가 가만히 앞으로 나온 아이가 옷자락을 당기며 말한다.

‘선생님, 엄마가 보고 싶어요.’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꼭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한마디가 시가 되고, 그 품 안에서 교사의 하루가 따뜻해진다.


선생님의 교실에는 아이들만큼이나 오래된 친구도 있다. 바로 운동장의 느티나무다.


“학교 운동장의 느티나무는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 외운다.

점프해서 느티나무 잎사귀 따는 5학년 놈들도 알고 사정없이 몸통에 공을 차 맞추는 6학년 놈들도 알고 꼬물꼬물 땅바닥에 그림 그리고 노는 1학년 여자애들도 알고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하는 6학년 여자애들도 안다“


느티나무처럼 선생님은 시 속에서 45명의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물론 실명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숫자가 아니라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제목이 된 시를 읽다가 나는 그만 빵 터졌다.


”서연아 왜 사과는 안 먹어?

못 먹어요

사과 싫어해?

아니요

그런데?

앞니가 없어서 못 먹어요“


급식지도를 하는 선생님과 서연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오버랩되면서 웃음이 터졌다. 하필이면 나 역시 요즘 임플란트 시술 준비로 앞니가 없어 자두조차 잘게 썰어 먹고 있는 중이라 더 그랬다.


시집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아이들은 선생님 삶의 에너지 자체인 듯하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사라진 빈 교실의 고요를 선생님은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선생님을 괴롭혀도 괜찮으니 어서 빨리 와서 같이 웃고 놀자고.





그렇게 아이들 속에서 함께 웃고 시를 쓰는 선생님도 교실 밖에서는 한 사람의 아내이고, 자녀들의 어머니이며, 며느리이고, 딸이다.


애타게 기다리던 방학을 맞는 마음에 나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말부부로 살면서 상경과 귀가를 반복하는 선생님의 설렘과 애잔함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의 그 묘한 긴장감은 나에게도 너무 익숙한 기억이다.


”그 방학은 진하고 행복했지만 속절없이 빨리 지나갔다

가족이 완성되는 방학

첫째는 걸리고 둘째는 업고 양손에 무겁도록 큰 가방 들고

기어이 방학이니까 꼭 가야 했던 외갓집 친정 나들이

막내딸 온다는 소식에 종일 기다려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손녀들 안아 올리던 엄마

방학은 마법의 시간“


교사에게 방학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한자리에 모이는, 말 그대로 ‘가족이 완성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 마법 같은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이 더 아쉽다.


시집에는 아이들과 학교의 변화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근무하던 지난 5년 전의 교실 풍경과 비교해도 학교생활이 많이 달라졌음을 ‘청소’라는 시에서 느낀다.

이제 청소도 교육이라 여기며 아이들과 함께 빗자루를 맞잡던 시간도 지나갔다. 애환의 화장실 벌청소도 없고, 신학기 준비물로 기워오던 걸레 대신 물티슈 한 통 가져오기가 전부란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있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는 보는 사람이 먼저 줍고, 내가 어질러놓은 것은 내가 치우는 바카라임감이다. 그것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보다 더 많이 웃으려는, 무장해제된 어린아이 같은 진정한 어른 선생님과 천사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교실. 그곳은 여전히 우리가 꿈꾸는 미래 교실의 밝은 희망이 아닐까.


신정애 작가님의 40년 아이들과의 동행 속에서 피어난 시집, 『서연아 왜 사과는 안 먹니?』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바카라을 덮고 나니 참된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어쩌면 아이들에게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 속에서 다시 어린 마음을 만나고, 웃음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

나 역시 교직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잠시 교실로 돌아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선생님” 하고 부르는 것 같다.


숙연하면서도 따뜻하다.

참 좋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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