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힘, 자존심의 문명

권삼윤의 『자존심의 문명 이슬람의 힘』을 읽고

by김별


중동 문제를 바라볼 때마다 그 한가운데에는 늘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벽이 서 있는 듯했다.

최근의 호르무즈해협 미·이란 전쟁과 이스라엘·레바논 문제, 예멘 후티의 홍해 활동 등 중동의 갈등은 여전히 세계의 에너지와 안보, 물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그 복잡한 중동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 권삼윤의 『자존심의 문명 이슬람의 힘』을 펼쳤다. 출간된 지 오래된 바카라이지만, 지금의 중동을 바라보는 데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저자가 말하는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외세의 침략과 서구 중심의 질서에 맞서며 형성된 하나의 문명이자 정체성이며 자존심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이슬람 세계의 저항과 갈등도 단순한 종교적 광신이나 반서구 감정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 ‘자존심’


바카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슬람의 힘을 ‘자존심’에서 찾는 시선이다.


여기서 자존심은 단순한 오만이나 공격성이 아니다. 자신들의 역사와 신앙, 문화가 다른 문명에 의해 함부로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명적 자각에 가깝다.

특히 저자는 페르시아 문명의 자부심과 시아파의 희생 기억, 그리고 서구 중심의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상처가 오늘날 이슬람 세계의 정체성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이란 혁명이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서구식 근대화를 빠르게 추진했다. 테헤란은 현대적인 도시로 변해갔지만, 그 이면에서는 자신들의 전통과 정체성이 밀려나고 있다는 불안도 커졌다.


따라서 이란 혁명을 단순한 종교혁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서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독립의 움직임으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오늘의 중동을 만든 긴 역사


바카라을 읽으면서 특히 새롭게 다가온 것은 오늘날의 중동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 뿌리를 로마제국과 십자군 전쟁, 오스만제국의 흥망, 유럽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제국은 일찍부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중요한 영역으로 삼았고,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일대 역시 그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후 이 지역은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두 문명이 만나는 공간이 되었다.


7세기 이슬람이 등장하면서 예루살렘을 비롯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상당 지역이 이슬람 세계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1세기말부터 약 200년 동안 유럽의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이 지역을 침략하면서 또 한 차례 거대한 충돌이 벌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당시 무슬림과 유대인의 관계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는 무슬림뿐 아니라 유대인들도 학살의 피해를 입었다.

반면 이후 이슬람 세계에서 유대인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간 시기도 있었다. 그러니 오늘날의 중동 갈등을 단순히 ‘종교적 충돌’로 설명하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종교의 차이를 이용한 정치와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유대인의 비극과 팔레스타인의 비극


유대인의 역사 역시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의 기독교 슬롯에서는 오랫동안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이어졌다. 무슬림을 몰아내던 레콩키스타 막바지. 스페인에서는 1492년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고, 이후 유럽 여러 지역으로 박해가 확산되었다. 동유럽에서도 게토 등 극심한 차별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강화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아랍계 팔레스타인인들이 있었다.


여기에 제국주의가 개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오스만제국에 맞서기 위해 아랍인들에게는 전후 독립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한편, 다른 세력과는 중동 지역의 분할을 논의하고, 유대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에 민족적 고향을 세우는 데 협력하겠다는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이중 약속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오스만제국은 무너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중동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했다. 국경은 외부의 손으로 그어졌고,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놓였다.

오늘날 블랙 아프리카 못지않게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이집트 등에서 제국주의 그들이 그어놓은 직선의 국경선을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이후 유럽에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증가하면서 아랍인과 유대인의 갈등은 점점 커졌다. 특히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은 유대인의 이주를 더욱 가속화했고, 그 과정에서 토착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도 거세졌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종교와 민족,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유대인의 귀환과 팔레스타인인의 삶의 터전이 복잡하게 얽힌 공간이 되었다.


바카라을 읽으며 나는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단순히 ‘유대교와 이슬람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 설명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문제의 배경에 유럽의 제국주의와 미국을 비롯한 외부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깊이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유일신 ‘사막의 종교'


이슬람이 태어난 아라비아의 사막은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 공간이었다. 강렬한 빛과 극심한 어둠, 물과 식량의 부족 속에서 인간은 자신보다 훨씬 큰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환경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같은 유일신 신앙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상업의 발달이었다. 동서 교역로의 변화로 메카가 번성하면서 물질적 풍요가 커졌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부족 공동체의 연대와 상호부조는 약해졌다.

부와 혈통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고 가난한 사람과 고아들이 소외되는 슬롯적 모순도 커졌다.

무함마드는 바로 이러한 슬롯적 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그는 히라산 동굴에서 오랜 명상과 사유를 거치며 인간과 신, 정의와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결국 새로운 공동체의 길을 제시했다.

그것이 이슬람의 출발이었다.



‘움마’라는 새로운 공동체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세운 움마(al-Ummah)도 인상적이다. 혈연이나 지역이 아니라 신앙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묶은 공동체였다. 이것은 부족 중심 슬롯에서 새로운 공동체 질서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이후 이슬람은 놀라운 속도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으로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졌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슬람 세계 내부의 중요한 역사적 차이가 만들어졌다.


특히 이란이 시아파의 중심이 된 배경을 이해하면 이란과 주변 아랍권의 관계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종교의 차이만이 아니라 민족과 역사, 정치와 권력의 기억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루 다섯 번, 신과 직접 만나는 사람들


바카라에서 소개하는 무슬림의 일상도 흥미로웠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차례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특별한 장소가 없어도 된다. 어디에서든 자리를 깔고 기도할 수 있다.

그들의 교회인 모스크는 예배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바카라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의 공간이다.


누군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특별한 중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 앞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라마단의 단식 역시 마찬가지다.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 지키는 자기 규율을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는 바로 이 자기 규율과 공동체 의식을 이슬람 문명이 가진 힘 가운데 하나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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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유럽의 근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바카라에서 의외였던 부분은 십자군 전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충돌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유럽이 이슬람 문명과 접촉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이슬람 세계를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의 지적 유산과 아랍의 과학기술, 의학과 수학, 제지술과 화약, 나침반 등의 기술을 접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알고리즘 (algebra와 연결된 수학적 전통), 알코올, 알칼리, 시럽, 소파 등 여러 언어와 생활문화에도 아랍어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슬람 문명은 유럽의 르네상스와 근대 형성에도 중요한 자극을 주었다.


유럽에는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남았다. 특히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면서 서구의 이슬람 공포가 더욱 깊어졌다.


역사를 한 방향에서만 보면 문명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쉽게 나뉘지만, 조금 더 길게 바라보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전사와 이웃 사람 사이


저자가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여행하며 느낀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외부에서 바라본 아프가니스탄은 전쟁과 탈레반, 테러와 저항의 이미지가 강하다. 바카라에도 파슈툰족 전사들의 강인함과 소련군에 맞선 게릴라 전쟁의 역사가 자세히 소개된다.


하지만 저자는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의외로 친절하고 순박했다고 말한다.

이 대목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한 슬롯의 정치적 이미지와 그 슬롯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은 결코 같지 않다.


우리는 뉴스에서 반복해서 접한 테러와 전쟁의 이미지를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투사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사랑하고 손님을 맞이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의 강한 저항 정신을 설명하면서도 이러한 개인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를 바라볼 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나 낭만적 미화가 아니라 직접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람을 이해한다는 것


이 바카라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슬람을 주로 뉴스 속에서 만났다. 테러, 전쟁, 여성 문제, 극단주의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바카라을 덮고 나니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저들은 저렇게 행동하는가?’

그 질문 앞에 종교만 놓아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그들의 역사와 민족적 자부심, 외세의 침략, 식민지 경험, 서구화의 충격, 종파 간의 갈등, 공동체의 기억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의 모든 정치적 행동이나 극단주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다른 문명과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정보와 편견이 실제 모습을 가리기 때문이다.



문명은 서로의 거울이다


바카라을 덮으며 결국 이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문명은 자신만의 기억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치 역시 우리의 역사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이슬람이라는 하나의 종교를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나와 다른 문명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에 상처받았으며,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바카라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행은 결국 다른 문명의 표면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했고, 때로는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도 깨달았다. 여행을 할수록 세상이 하나의 기준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제 중동의 뉴스를 볼 때도 단순히 ‘이슬람 세계의 문제’라고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그 안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상처가 있고,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자존심과 기억이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와 똑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명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문명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존심의 문명 이슬람의 힘』은 나에게는 지금도 유효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우리는 과연 다른 문명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은 이슬람을 향한 질문이기 전에,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던지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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