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온기를 따라 걷다

여행자 김별

by김별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부터
나는 여행자였다.


19세기 거친 바람을 온몸으로 건넜던
*이사벨라처럼
사람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기꺼이 온기를 잇는 한 점이 되어 걷는다.


내 몸보다 큰 여행가방의 무게로

부다페스트의 계단 앞에서
망연자실 할 때

한 손에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가
함께 내 짐을 들어주었고
바싹 마른 할아버지까지
내 곁에서 손을 보탰다.


그날 낯선 길 위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세상은 아직도 따뜻한 곳이구나.


그 다정함을 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한 줄기 햇살같은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라오스 뱃사공의 맑은 눈빛에
하루치 수고를 더 얹어주고,
카이로의 먼지 바람 속에서는
기꺼이 내 겉옷을 벗어 건넸다.


어느 낯선 변방에 서 있든
우리는 결국
같은 체온으로 숨 쉬는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에서
모래바람 흩날리는 중앙아시아의 흙길까지.

걸어온 모든 시간은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바라보고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하게 하는
다정한 나침반이 되었다.


동병상련의 마음,
약한 존재를 향한 연민,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한 경외.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미지에 대한 설레임

그것들이 여전히
내가 길을 떠나는 이유다.


그래서 나의 심장은
아직도 낯선 골목 앞에서 뛴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낡은 트렁크 하나를 곁에 두었던
*Bird, 그녀처럼,

나도 내 걸음이 다하는 날까지

새 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길 위에 머물고 싶다.



그리고 이제
지구라는 별을 오래 바라보던 나의 시선은
조금 더 먼 곳을 향한다.

다가올 미래,
아득한 우주의 바다.


나는 ‘별’이라는 이름으로
이 넓은 세상에 작은 빛 하나를 보태며

사람과 사람을,
어제와 내일을,
그리고 언젠가 만날
먼 별과 별을 이어주는

영원한 여행자로
남고 싶다.







출처-위키피디아


*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Bird Bishop, 1831~1904)


1831년 영국 잉글랜드 요크셔에서 태어난 그녀는 23세에 캐나다와 미국 각지를 여행하며 기록한 자신의 여행기인 『미국의 영국여인』을 출판했는데 이 바카라은 45쇄를 찍을 정도로 1856년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바카라에서는 미국의 노예 제도에 대해 비판하고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30대 이후에는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해 뉴질랜드, 호놀룰루등을 을 다녀오고 1875년과 1879년 자신의 미국 경험을 바탕으로 『샌드위치 섬에서의 6개월』, 『로키산맥의 어느 여인』을 간행했다.


40세가 넘으면서부터 대학에서 지리학 공부한 후 1878년 일본 제국을 방문하며 홋카이도에서 아이누족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영국령 홍콩, 광둥성, 말레이 반도를 답사한 후 귀국해 『알려지지 않은 일본』(1880)과 『황금의 체르소니즈와 그 곳에 이르는 길』(1883)을 출간했다.


1881년 51세 때 10살 연하이자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의사 존 비숍과 결혼하였으나, 결혼한 지 5년 만에 병사하였다. 1889년 58세의 나이로 중동을 답사하고 인도의 스리나가르로 가서 사재(私財)를 털어 남편을 기리는 ‘존 비숍 기념병원’을 세웠고 이후에도 티베트, 터키, 페르시아, 쿠르디스탄, 바그다드, 테헤란을 여행하였다.


1892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 되었고,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 모로코를 거쳐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후 아틀라스 산맥에 등정하게 된다.

그녀의 일본 여행기를 그린 '이상한 나라의 버드'라는 만화가 있다.



그녀는 조선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60대의 나이에 조선에 입국해 4년 동안 한반도를 답사하고

고종과 명성황후 부부를 접견한 뒤, 명저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집필했고

아래와 같은 서술을 남겼다.


"한국인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에,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 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한국인은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하다. 한국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를 상당히 타고 났다. 외국인 교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한국인의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 나아가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모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어느 계급일지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단 몇 주라도 서울을 떠나 살기를 원치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라고 썼는데 그 때 이미 요즘식 표현으로 서울 공화국을 지적했던 셈이다.

저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1898년(을미사변 3년 후)에 출간되자마자

유럽과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현대처럼 각 나라에 언론사 주재 특파원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서양에는 전신이나 인편 등으로 관련 소식만 전해지던 시절에

조선의 상류슬롯, 특히 명성황후 살해 사건의 전말이 고스란히 적힌

르포가 당대 최고의 여행저술가에 의해 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고

이는 비숍 자신이 명성황후를 비롯한 당시 조정과 친밀히 교류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사재를 털어 병원을 세우는 등 나눔을 실천했던 그녀는 72세로 병사하는 임종의 순간에도

다음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당장 배에 실을 수 있는

여행 트렁크를 머리맡에 싸두었던

영원한 여행자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녀를 보면 13세기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나

14세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을 가로지른

이슬람 여행가 이븐 바투타 못지않음을 본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지리를 공부하고

여행한 진정한 문명탐색가로서 그녀를 존경하고

그녀의 삶이 지금 나에게도 공명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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