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이 던지는 질문

연결의 힘으로 여는 ‘개벽(開闢)’의 시대

by김별

우리는 오랫동안 서구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서구의 문법으로 근대를 학습해 왔다.


그러나 역사학자 이병한 교수의 3부작 완결편인 《유라시아 견문 3: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이러한 서구 중심적 세계관에 강력한 균열을 낸다.


1,000일간 100개국 1,000개 도시를 주유하며 완성된 이 기록은, 낡은 패권 질서가 저물고 ‘유라시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문명적 도발이다.



1. 연결의 질적 도약: ‘인체도(人體圖)’가 된 유라시아


저자는 21세기의 세계지도를 ‘국경’이 아닌 ‘연결망’으로 다시 그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도로와 철도, 인터넷 케이블은 지구라는 몸통을 흐르는 혈관이자 신경망이다. 이러한 물류와 문류(文流)의 양적 축적은 어느덧 티핑 포인트를 지나, 격이 다른 질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제 유라시아는 강대국들의 체스판이 아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지평 위에서 맺어진 거대한 ‘인드라망(그물망)’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억지스러운 경계는 물렁해지고, 그 빈자리에 사해동포의 감각이 실감으로 승격한다. 앞으로 30년, 이 거대한 연결망이 완성될 때 유라시아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조정하는 진정한 ‘지구의 중원’으로 도약할 것이다.



2. 물질의 개벽에서 정신의 개벽으로


이 바카라이 주는 울림은 물질적 연결을 넘어 ‘정신의 개벽’을 향한다. 저자는 산업화 시대의 노동 소외를 넘어, 인간 존재 자체가 소외되는 정보화 시대의 백척간두를 지적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이성을 압도하는 시대, 이제 인간은 ‘이성적 존재’를 넘어 ‘영성적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이는 150년 전 동학이 설파한 ‘인내천(人乃天)’의 현대적 계승이다. 논리와 합리라는 근대적 도구만으로는 사피엔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외부의 물질세계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참나를 갈고닦는 ‘수양학’과 ‘수도학’이 곧 첨단 과학 시대의 핵심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



3. 발칸의 비극에서 건져 올린 반면교사


연결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저자는 발칸반도라는 비극적 현장을 통해 맹목적인 ‘종교적 근본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가 부르는 파멸을 경고한다. 크로아티아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이교도를 배척하는 ‘신의 나라’를 건설하려 했으나, 그 맹신은 결국 동족상잔의 끔찍한 종교전쟁을 불렀다.


이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과 정반대 편에 있다. 진정한 ‘개벽’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십자군 전쟁이 아니라, 타자를 수용하고 인류가 ‘지구일가(地球一家)’를 이루는 과정이다. 우리는 19세기 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 구도를 넘어, ‘개벽파’의 실체를 복원해야 한다. 3·1 운동의 정신을 잇고 촛불혁명을 지나, 개화와 개벽이 대합창을 이루는 새로운 100년을 궁리해야 할 때다.




4. 길 위에서 발견한 우리의 미래


나 역시 유라시아의 끝에서 끝으로 향하는 15화의 긴 여정을 쓰고 있다. 로마, 이스탄불, 자그레브, 조지아의 산맥을 지나며 내가 목격한 것은 충돌의 역사를 견뎌내고 봉합의 예술을 피워낸 인류의 강인함이었다.


이병한 작가의 울림은 내게도 나침반이 되었다. 강대국들이 지배하던 ‘길’이 아니라, 각자의 문화가 존중받는 ‘수평적 연결’의 길. 우리가 꿈꾸는 남북 철도가 시베리아를 관통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과거의 제국이 정복을 위해 냈던 길과는 격이 다른 ‘평화와 공존의 통로’가 될 것이다.


2045년 해방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구의 굴절된 근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대륙의 혈관을 잇고 그 안에 사람의 도리를 채우는 일이다.


미래는 정복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가장 널리 연결하고 가장 깊이 성찰하는 자의 것이다.


나 또한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서, 배우고 성찰하며 더 연결하는 사람이 되기 여전히 또 길을 떠날 것이다.





발칸의 홀로코스트


원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는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없다. 동족이다. 하지만 종교가 달랐다. 카톨릭을 신앙하는 크로티아는 자신들이 남슬라브 유고슬라비아의 맹주라 여기며 동방정교를 믿는 세르비아를 학살하기에 이른다.

>괴뢰 국가 크로아티아가 수립한 정바카라은 경악스러웠다. 자국 내 200만 정교 세르비아인 가운데 3분의 1은 개종시키고, 3분의 1은 추방하며, 3분의 1은 학살키로 한다. 유대인 학살을 솔선수범했던 독일마저 질겁했을 정도다. 유고슬라비아의 킬링필드가 펼쳐진 다. 난징 대학살을 능가하는 발칸 대학살이었다. -227

독가스 살포를 비롯해 근대적 기술을 활용한 살육이 아니었다. 총도 아니고 칼과 도끼가 더 많이 사용되 었다. 요구한 것 또한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이념 전향이 아니다. 단연 개종이었다. 총검을 앞에 두고 강제 개종이 자행되었다.


거부하는 이들은 정교 성당에 밀어 넣고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성직자들이 깔끔 하게 면도하는 가톨릭과 달리, 정교 신부들은 턱수염을 길게 기른다. 그 남다름조차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혐오스런 수염을 베어버리고 눈은 뽑아버리고 코와 귀는 잘라버렸다.

발칸이 경험한 제2차 세계대전은 자유주의나 전체주의, 공산주의 간 전쟁이 아니었다. 명명백백 종교전쟁이었다. 동/서 교회 간 지하드(성전聖戰)가 처절했다.


매우 독특한 현상은 정교 세르비아인의 박멸을 위하여 무슬림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기왕의 종교전쟁, 십자군과는 다른 양상이다. 크로아티아는 가톨릭과 이슬람에 속해 있다고 했다. 가톨릭과 이슬람의 위대한 역사가 크로아티아 독립국으로 합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정교 성당을 파괴하는 반면 자그레브에는 새 모스크를 지어주었다. 정권이 준비한 300만의 탄알은 오로지 세르비아인과 유대인과 집시를 향했다.

무슬림보다 정교도에 더 적대적인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크로아티아인과 한 민족이었 기 때문이다. 한 뿌리이건만 동족상잔도 마다치 않은 것이다.-229~230



지금 우리 앞의 탁자 위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에서 줄기가 자랐 다고 하여 줄기가 뿌리보다 더 진보한 것입니까? 열매가 꽃보다 더 진보한 것입니까? 뿌리는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합니다.


꽃은 시들고 열매는 떨어지지만, 뿌리는 생명이 있는 한 지속합니다. 즉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닙니 다. 과거/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보수주의란 최종적인 열매만 편 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까지 동시에 숙고하는 전체적이고 유 기적이며 항상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속성 재배는 오래가지 못합니 다.


스탈린의 좌파 혁명도, 옐친의 우파 혁명도 금방 주저앉았습니 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뿌리가 튼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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