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5세통, 얼른 지나가주시죠.
평소 글을 쓰면서 엉킨 생각도 착착 정리하고 쌓인 스트레스도 탈탈 털어내는 편이다. 글을 쓰고 생각을 하는 행위보다 더 완벽한 건 적어도 나에겐 없었다.
그런데 요 근래 전혀 글을 쓰질 못했다. 노트북을 켤 시간도.. 아니 솔직히 말하면 노트북을 켤 심적 여유가 전혀 없는게 맞겠지.
이유는, 정말 별것이 아니긴 한데, 또 지금의 나에겐 매우 별것이라 문제다. 바로.. 아이들에게 생떼역병이 제대로 온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아이들은 당연히 생떼를 부렸다. 힘들긴 했지만 아이도 꽤 금방 멈추고 나의 말에 납득을 했다. 나도 아이들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작은 아이니까 이해 못할 것이 없었다.
작은 생떼 정도야 이렇게 곱게 마무리를 할 수 있지만.
요즘의 생떼는 정말 피를 말리고 두 귀를 떼가고 내 정신을 시궁창에 처박아버리는 듯하다. 평소엔 말도 마음도 잘 통하는 딸아이들이지만 작은 것 하나가 본인들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온 몸을 바닥에 굴리고 튕겨대며 발악을 하는데, 친정엄마가 보고 기함을 하셨다. "너희들은 안 그랬는데..." 만 반복하신다. 엄마의 기억이 맞는건지, 너무 괴로우셔서 힘든 건 잊으신건지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긴 하다.
아무튼 우리집 그녀들은 요즘 날 그야말로 미치게 만든다.
Ep.1
요즘따라 비밀이 많아진 딸들.
정말 사소한 것들도 비밀로 해 달라고 떼를 쓴다. 그럼 나는 마지못해 "어, 그래그래. 비밀이야 비밀." 해버리는데 냐냐가 그런 내 대답이 시원찮게 들렸는지 "엄마, 내 얘기 좀 잘 듣고 똑바로 대답해주세요." 라고 했다. 아니, 그러니까 너는 지금 티셔츠를 느닷없이 들어올려 배가 다 보이게 한 것도 비밀, 쉬야 하라고 했는데 못한것도 비밀, 간식을 먹다가 떨어트린것도 비밀로 해달라는 거잖아? 왜 그게 비밀인데?
하지만 난 말할 수 없다. 그냥 알겠다고 한다.
내 입으로 뭔가를 더 말하면 목이 쉬도록 생떼를 부리며 운다.
Ep.2
양말에 집착이 심한 야야와 냐냐.
집에서도 양말을 신고 싶어한다. 본인들이 신고 싶은 예쁜 양말을 골라두고 몰래 숨겨두기도 한다. 나는 그 양말들이 방바닥에 나뒹굴때마다 주워 세탁기에 넣는데, 그렇게 갈 곳을 잃고 세탁기로 들어가는 양말들이 너무 많아지자 보다못한 친정엄마가 양말을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두셨다. 거기서 끝이 날 줄 알았는데, 야야는 본인 맘에 드는 양말을 신어야 한다며 얼굴이 터져나갈 것 같이 울어댔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그냥 안듣는다. 미칠 것 같다.
Ep. 3
냐냐가 애착지갑을 어린이집이든 마실이든 언제든 꼭꼭 쥐고 다닌다. 그걸 부러워한 야야도 냐냐보다는 얇은 지갑을 종종 챙겨가지고 다니는데, 어느날 하원하려는 중에 지갑을 챙기지 않은 야야가 없는 지갑을 찾으며 어린이집 앞에서 악을 쓰며 울었다.
"야야, 지갑 오늘 네가 안 가지고 왔는데 없는 지갑을 어떻게 찾아."
하지만 안 듣는다. 지갑 달란다. 너무 화가 나서 눈알이 빠져나갈 것 같다. 그냥 나도 뇌를 빼놓고 무논리로 생떼 부릴까?
Ep.4
변기에 응가를 잘 한 아이에게는 계란과자 7개, 초코빼빼로 2개, 딸기빼빼로 1개를 행동강화 보상으로서 주기로 약속했다. 야야와 냐냐, 나 이렇게 셋의 약속이고 아이들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어제 냐냐가 변기에 응가를 잘해서 컵에 과자를 저렇게 담아주니 야야가 자기도 노력했는데 응가가 나오지 않는다, 나도 과자 먹고싶다, 냐냐는 오늘 달콤한 걸 많이 먹었는데 난 먹지 못했다... 라며 계속 내게 어필했다.
"이건 엄마랑 너희들이 약속한 거야. 네가 그렇게 과자 먹고싶다고 생떼 부려봤자 엄마가 줄 것 같아?"
"아니요..."
"그러면 너도 힘드니까 그만해, 그냥. 엄마도 듣기 힘들어."
야야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무리 그래봐라. 계란과자 한개라도 입에 넣어주나.
아니, 에어팟은 왜이리 노이즈캔슬링이 형편없는 것인가.. 뇌가 깨질 것 같은 저 아이의 울음소리가 전혀 커버되지 않는다.
한참 있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았는지 포기하고 냐냐랑 인형 옷 입히기 놀이를 하는 야야. 놀다가 나에게 또 와서 안긴다.
"야야, 그래도 야야 노력한 거 엄마가 다 알아. 내일은 꼭 응가 할 수 있을거야. 그 때 과자 먹으면 더더 맛있겠다."
노력한 아이는 그 자체로 칭찬받아 마땅하니까 한 번 칭찬을 해준다. 그런데 나는 누가 칭찬해주지?
22년 12월생. 지금 딱 41개월 된 사랑스러운 우리집 딸둥이들은 요즘 너무나 격한 5세통을 겪고 있다. 집은 여기저기 티니핑 관련 장난감들이 널려 있고, 언제나 치마를 입어야 하며, 머리스타일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본인의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겨 버린다.
저번 주말엔 병원에 얼른 가려고 블랙 색상의 시원한 소재로 된 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혔더니 그걸 가지고도 대성통곡을 했다. 왜 진분홍색 치마가 아니냐고 한다.
"너희들 이렇게 입어도 너무 예뻐."
나는 얼른 수습을 해본다.
"정말이에요?"(훌쩍거리며)
"그럼!"
"그러면 우리가 입은 옷이 진분홍 드레스라고 해 주세요."
"?????"
대충 대화가 이런 식이다. 빨강머리앤이 퍼프소매 드레스를 원했듯이, 우리집 딸들은 언제나 분홍색 옷을 원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깊은 한숨이 나온다.
일춘기인 것일까? 일춘기가 이 정도면 사춘기는 어떻다는거지?
난 아직 나를 안 내려놓은 것일까?
어디까지 더 내려놔야 속에서 천불이 안날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보며..
아무튼, 인간의 성장사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내가 그 엄청난 성장사(그것도 두 명...!) 한 가운데서 매일 허우적대고 있다니.
난 지금껏 인생에서 이토록 강력한 캐릭터들은 본 적이 없다.
여러모로, 나라는 돌을 맨들맨들하게 다듬어주는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