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꽈배기 만들기

설탕 듬뿍 묻혀주세요

요즘 아이들이랑 함께 하는 재미난 것 중 하나가 '이야기 비틀기' 놀이다.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 전부터 아이들과 바카라을 볼 때 해왔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생활동화바카라을 읽다가 "너희들이라면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강아지를 데리고 올거야?" 라고 묻는다거나 "이 친구(바카라 주인공)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식의 짧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걸 아이들 말이 트인 이후부터 해왔으니 거의 20개월 정도는 같이 생각하는 바카라읽기를 해온 것 같다. 처음에는 '좋아' 혹은 '싫어'의 단답형 대답이 전부였다면, 요즘엔 정말 기이한 답변을 많이 내놓는다.


아이들과 백설공주를 읽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몰입해서 듣고 있던 냐냐가 갑자기 입을 뗐다.

"거울은 왜 이렇게 백설공주가 자꾸 제일 예쁘다고 하는거야. 그러니까 왕비가 자꾸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하지!"

"오, 맞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사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그냥 적당히 '왕비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하면 될 일을 왜 이렇게까지 백설공주가 제일 예쁘다고 하는거야 글쎄!"

평소 나도 거울이 제일 나쁜 녀석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냐냐가 먼저 그렇게 이야길 꺼내줘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뒤로 나는 세계명작을 내 입맛대로 각색(?)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신데렐라의 새언니들은 그날도 무척이나 많은 빨랫감들을 신데렐라 앞에 던져놓고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어. 신데렐라는 갑자기 마음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지. 그리고는 그 많은 빨랫감들을 가지고 언니들 앞에 도로 던져버렸어. '아니 너 지금 뭐하는거야?' 화가 난 언니들은 신데렐라에게 매섭게 쏘아붙였고, 신데렐라도 거기에 지지 않고 당당히 말했어. '언니들, 이제부터 각자 빨래는 각자가 하도록 해요. 전 이제부터 언니들 빨래든 청소든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을거예요!' 새언니들은 너무 기가 차서 새엄마에게 일러바쳤고, 새엄마는 신데렐라를 나무랐어. 하지만 신데렐라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지. '새엄마도 새엄마 빨래 알아서 하세요!' 이 광경을 보고 듣고있던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여태껏 신데렐라에게 집안일만 잔뜩 시킨거냐며 새엄마와 새언니들을 크게 혼냈어. 할 말이 없어진 새엄마와 새언니들은 그 후로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했단다."


이렇게 신데렐라를 패기 넘치는 여성으로 만들어버린(?) 이야기를 야야와 냐냐는 무척 좋아했다. 나는 뒤이어 무도회장 스토리도 뒤틀어버렸다.


"집안일을 착착 끝낸 뒤, 무도회장에 가려고 준비하던 신데렐라 앞에 요정이 나타났어. '신데렐라야. 예쁜 드레스와 구두를 만들어줄게.' 그러자 신데렐라는 거절했어. '요정님, 제 바느질 솜씨는 이 마을 최고인걸요? 제 드레스는 제가 만들어요. 한 번 보세요.' 신데렐라는 엄청난 솜씨로 멋진 드레스를 재빠르게 만들었고, 요정은 구두만큼은 정말 주고 싶다며 신데렐라의 손에 구두를 쥐여주었지.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늦을세라 한손엔 구두를, 한 손엔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재빨리 성으로 뛰어갔어. 도착한 성에서 왕자님과 춤을 추게 되었는데, 이 왕자님이 글쎄 신데렐라를 보고 첫 눈에 반했대. 그러다 시간도 늦고 피곤해진 신데렐라는 구두 때문에 발이 아파 잠깐 벗어두고 있던걸 깜빡하고 그대로 또 맨발로 집에 가게 된거야. 다음날, 왕자를 모시는 병사들이 유리구두를 들고 신데렐라 집에 왔어. '어머, 이거 내 구두 아니야?' 언니들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지. 하지만 신데렐라가 재빨리 병사들에게 모습을 보이고 바로 구두를 신어보였어. 병사들은 신데렐라가 구두의 주인인 것을 알게 되고 곧장 신데렐라를 성으로 데리고 갔어. 왕자는 신데렐라에게 다짜고짜 '당신과 결혼하고 싶소.' 라고 했지. 신데렐라는 당황스러웠어. '네? 결혼이요? 어제 만났는데 무슨 벌써 결혼이죠? 전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요.' 성을 박차고 나온 신데렐라는 그 후로 바느질 솜씨를 앞세워 예쁜 옷들을 만들었고, 그런 신데렐라의 옷은 누구나 입고 싶어하는 멋진 옷이 되었대."


꽤 긴 이야기인데다 내 생각엔 억지스러운 부분들이 많았지만 아이들은 미동도 않고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무척 흥미로워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어떤 신데렐라가 더 마음에 들어?"

"엄마가 들려준 신데렐라!"

야야와 냐냐는 당돌하고 당찬 신데렐라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이왕 이렇게 이야기들이 꽈배기가 된 김에, 다른 이야기도 배배 꼬아보았다.


"너희들, 흥부와 놀부 있지? 놀부가 나빠서 흥부에게 부모님 돈 안 나눠주고 혼자 홀랑 다 가져버렸잖아. 어느날은 흥부가 너무 배고파서 놀부한테 찾아가 '처자식들이 굶고 있습니다. 쌀 조금만 나눠주세요 형님.' 하니까 놀부가 코웃음을 쳤어. 그러자 흥부가 기분이 상해서 '아니 형님, 부모님 돈도 형님이 다 가져가놓고 쌀 한바가지 안 주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하더니 놀부네 곳간에서 쌀을 한가마니 냉큼 짊어지고 도망쳐버렸어. 그런다음, 배고픈 처자식들에게 실컷 쌀밥을 먹이고 남은 쌀로 떡을 만들어 내다 팔았는데, 솜씨가 좋았는지 떡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떡 판 돈으로 또 쌀을 사 떡을 만들고를 반복하다보니 흥부는 어느새 놀부보다 부자가 됐대. 보다못한 놀부가 원님에게 가서 '흥부 저 녀석이 우리집 곳간에서 쌀을 훔쳐가 떡을 만들어 팔아 부자가 됐습니다요. 그러니 저 녀석의 재산은 모두 제 것입죠!' 라고 우겼다가 오히려 곤장을 실컷 맞았대. 형제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라고 부모님께서 유산을 남겨주셨는데도 그걸 어기고 놀부 혼자 다 가져서 고래 등만한 기와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게 된 걸 그 마을 원님도 알고 있었던거지. 놀부는 곤장뿐만 아니라 곳간도 모두 털렸어. 그 후 거지가 된 놀부 부부는 흥부네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 뒤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대."


사실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이야기라면 흥부는 놀부에게 절연하자고 했겠지만, 아이들이 들을 이야기라 차마 절연까진 말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로워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야야가 "근데 제비는요?" 해서 흠칫, 했지만

"흥부는 제비가 날아왔을 때 제비집을 손수 만들어줬어. 그렇게 흥부 집이 어려운데도 작은 동물을 아끼고 소중히 여겼지. 착하니까 큰 복이 굴러온 게 아닐까?" 라고 얼렁뚱땅 덮었다.


아이들이 요즘 푹 빠진 인형 옷입히기 놀이를 할 때도,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어 상황극을 한다.

"공주님, 우리 결혼해요,"

"아니, 무슨 만나자마자 결혼이에요?"

방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야야가 이런 얘길 하며 놀고 있는 걸 보고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냐냐는 백설공주의 한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님이 제일 예쁩니다."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뭐라고? 정말이야?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냐냐가 말을 이었다.

"백설공주가 예쁘다고 말하면 왕비님이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왕비님이 제일 예뻐요."


하하.. 냐냐야, 그렇게 말하면 왕비도 눈치가 있어서 거울을 깨버리고 말 것 같은데?


아이들은 아직 세상의 이야기를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 것 같다. 그 말랑하고 자유로운 아이들의 생각이 가끔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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