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육아에 계획이란 단언컨대 사치

어린이날에 뭘 할까 며칠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날이 날인지라 아이들 둘 데리고 멀리 나가기에도 부담되고, 그렇다고 늘 놀던 놀이터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또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러다 문득 서점이 생각났다. 그래서 아침에 와주시기로 한 친정엄마와 함께 애들을 데리고 버스로 딱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서점에 갔다. 들어가자마자 풍겨오는 서점 향기. 실제로 그 서점 향이 나는 향수를 판매한다고도 하던데, 우리집 고양이가 싫어하겠지 싶어 구입하는 걸 포기했더랬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림바카라 코너로 갔다. 평소 바카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예쁜 그림바카라을 보면 정말 좋아할 줄 알았더니 대항마 티니핑 스티커북에만 관심을 보였다. 쌍둥이라 이런 걸 사줄 땐 '똑같은' 걸 하나씩 쥐어주곤 하는데, 그날따라 스티커북은 종류별로 하나씩밖에 없었다. 각자 다른 걸 구입해도 안 싸우겠다고는 했지만, 평소 약속 이행률이 처참한 그녀들에게 다른 스티커북을 각각 사줄 순 없었다.

"아니에요. 냐냐랑 안 싸우고 잘 가지고 놀거예요."

야야의 의지가 대단했다.

"그럼 티니핑 친구들 네 명 있는 이걸 하나만 사고, 두명씩 나눠서 옷 입혀줘. 그러면 되지 않을까?"

"좋아요!"

본인의 판단을 굳게 믿는 이 아이의 의지를 더 이상 꺾는 건 안될 일이었다. 티니핑 스티커북은 한 개, 그림이 아주 예쁜 그림바카라은 두 권. (그림바카라은 결국 내가 골랐다) 이렇게 골라서 냉큼 계산하고 서점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있다가는 냐냐가 주저앉는 걸 넘어서서 드러누울 것 같았다.(그녀는 계산대 옆에서 정말 주저앉았다!)


곧바로 서점 지하철역과 연결된 백화점 키즈코너로 향해 갔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걷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할머니가 애들 옷을 사준다고 해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평소 매우 잘 입히는 브랜드로 가서 신상품을 빠르게 스캔하고, 공홈에서 쿠폰받아 저렴하게 사야겠다 다짐하며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카페엘 가서 아이들이 잘 먹는 베이글을 같이 먹고 기분 좋게 집에 도착해서 낮잠을 잤다.


여기까진 좋았다.

이후의 상황은 전혀 상상도 못했지만..


낮잠에서 깬 아이들은 반차내고 온 아빠를 보고 좋아했다. 간식으로 망고를 잘라주고,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아이들을 웨건에 태웠다. 근데 냐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빠랑 나가는 걸 너무 좋아하는 아이인데, 집에서 엄마랑 있고 싶다고 말했다.

"어디가 아파?"

"배가 아파."

냐냐랑 집에 다시 올라갈까, 하다가 도착지를 최대한 가까운 장난감 가게로 변경하고 웨건에 태웠다. 거기라면 왕복 3,40분밖에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웨건을 탄 냐냐의 고개가 자꾸 축 처졌다.

"냐냐야, 괜찮아?"

괜찮다고는 했지만 얼굴이 좋지 않았다. 빨리 볼일보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너무나도 간만에 듣는, 구토 소리가 들렸다.

"냐냐야, 괜찮아?"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엔 와르르 다 쏟아냈다. 급한대로 내 양손으로 받아냈는데 전혀 터무니 없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옆에서 야야는 놀랐는지 엉엉 울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토한 아이 다독이며, 우는 아이 달래가며 그렇게 상황을 남편과 수습하고 끝냈다. 이때부터 그 다음날까지, 냐냐는 몸이 많이 아팠다. 병원에 바로 가고 싶어도 하필 어린이날이라 급한대로 약국에서 경구수액을 사와 5분 간격으로 티스푼을 사용해 먹였다. 한 30분 넘게 그러고 있다가 남편에게 '6개월 첫 이유식의 기억을 더듬어 쌀미음 10배죽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냐냐는 맛없다고 하면서도 여섯 숟가락이나 먹어줬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렇게 더는 구토도 안하고 기운을 조금 내 준 냐냐는 약 15시간만에 소변 보는데에도 성공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설사를 했는데 그걸 간과했다. 그러니 냐냐는 설사, 구토, 탈수 직전까지 쓰리 콤보나 겪은 것이다. 어른도 이러면 힘들어서 쓰러지는데, 그 작은 몸이 얼마나 기운이 없었으면 평소 활기찬 짹짹이임에도 불구하고 아프기 시작한 그 다음날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워만 있으려고 했다. 탈수가 오지 않게 하기위해 계속 경구수액과 이온음료를 먹였고, 소변을 보게 하려고 갖은 사탕발림을 해댔다. 하지만 결국 소변은 아이가 보고 싶을 때 봤고, 아이는 점점 회복해 나갔다.


그리고 오늘, 아이는 평소가 같은 컨디션으로 까꿍! 하며 쾌활하게 기상했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예쁜 그림바카라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한두권씩 골라준다면 고르는대로 다 사줘야겠다 생각했고, 장난감 가게에서 아이들 입맛에 맞는 장난감을 고르면 "와, 멋지다!" 라고 맞장구 쳐주고 싶었다.


그 어떤 것도 내 생각대로 된 것이 없다.


어린이날, 아이가 그렇게 격렬히 다 쏟아내고 무척이나 아플 것이라고는 젼혀 예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흔치 않은 그런 일이 냐냐에게 일어났다.


어린이날을 잘 보내고 다음날 홀가분하게 등원을 시켜야지, 라는 내 작은 소망은 처참히 깨졌다. 아이들에게 "너희들 오늘 어린이집 안 가고 엄마랑 같이 있어주니까 엄마 너무 행복하다" 라고 했지만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너무 아픈 아이와 너무 활기찬 아이의 균형은 대체 어떻게 맞춰야 하는 것일까?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쩌면 이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을까?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반성했다.

어디 숭고한 육아에 계획 따위를...


(심지어 오늘은 원에서 반일만 있다가 낮잠 전에 데리고 왔는데 2시쯤엔 피곤해서 잘 거라 예상했지만 둘 다 장난만 치다가 세시쯤 잠들었다. 나는 어째서 계획을 또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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