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성지 생 제르맹 데 프레 골목과 프로코프식당

by박정옥

-문학의 성지 생 제르맹 데 프레 골목 탐방과 프로코프(Le Procope) 식당 -

여행 온 지 며칠이 지났지만 지독한 길치인 나는 일행의 뒤쪽에서 종종걸음을 했다. 아침마다 숙소 근처인 꽁방시옹 역에서 탐험을 떠나는 사람처럼 비장하고 기대에 찬 걸음으로 파리의 지하철을 탔다.

문학의 성지 생 제르맹 데 프레 근처에서 방사형으로 뻗어있는 골목골목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골목마다의 특색을 보기도 하고 음료와 빵을 파는 카페에서 서툰 언어로 음료도 사 먹고 마카롱 전문가게와 동네 바카라방 같은 골목 바카라방에도 가 보았다. 완전한 자유시간을 가진 셈이다. 구경하다가 맘에 드는 물건이 있기에 흥정해서 샀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상가거리 같은 느낌이 났다.


(문학의 성지, 생 제르맹 데 프레 골목의 일부)


두어 시간의 자유시간을 보내고 예약해 둔 프로코프(Le Procope) 식당으로 갔다. 이곳은 1686년에 문을 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사실 이 레스토랑은 한국에서 문학기행 일정을 짜면서 예약해 둔 식당이었다. 그만큼 예약이 어려운 식당이라고 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등이 자주 찾아 지적 토론을 하던 곳이며 볼테르는 이곳에서 하루에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또 혁명을 논의하던 정치인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자유·평등·박애의 스피릿이 논의되던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층으로 올라가는 정면 벽에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나폴레옹이 쓰던 삼각/이각 모자가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었다. 청년 시절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음식값을 낼 돈이 부족해 "곧 가져오겠다." 하고 담보로 맡겨두고 간 모자로, 아직도 전시되어있는 르 프로코프 식당의 가장 상징적인 볼거리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가 매일 찾아와 커피와 앙리 4세 풍 술(Eau-de-vie)을 섞어 마시며 글을 쓰던 전용 목재 테이블이 남아 있었다. 상판이 다소 손상된 채로 보존되어 있고 그가 하루에 커피를 40~50잔씩 마셨다고 전해온다.

( 나폴레옹이 쓰던 삼각/이각 모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과 복도에는 프랑스혁명 당시 쓰인 인권 선언문 원본 복제품과 사상가들의 친필 서한, 혁명 격문들이 걸려 있고 혁명의 상징인 붉은 프리기아 모자(Bonnet Phrygien)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화려한 18세기 풍 샹들리에와 이곳을 거쳐 간 역사적 인물들의 유화 초상화와 18세기 양식의 거울, 화려한 조명 등을 볼 수 있었다.


( 2층으로 올라가는계단 일부)

18세기와 19세기 문학과 철학의 가장 유명한 중심지인 이곳을 드나든 인물들은 라 퐁텐(La Fontaine), 볼테르(Voltaire),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당통(Danton), 마라(Marat,),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발자크(Balzac), 빅토르 위고(Victor Hugo), 로베스피에르, 루소, 디드로 등등이었다고 한다.


(사진의 하얀 동그라미 부분에는 1686년에 설립된 카페 프로 코프(Le Procope)는 프랑스혁명의 역사적인 사건 들의 현장이었습니다.(구글 번역) 하는 글귀와 여러 모임과 사건들에 대해 기록되어있다

인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식당이라기보다 문학과 철학,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프랑스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드나들던 유서 깊은 곳에 우리가 탐방했다는 사실에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전채와 메인, 와인과 후식까지 곁들인 멋진 점심을 했다.

몸과 마음이 충만된 즐거움을 느끼고 다음 목적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향했다.


( Procope라는 레스토랑 이름을 새긴 고급 자기접시에 내가 주문한 메인 메뉴로 나온 감자프레 위의 스테이크)











글은 기억에 의한 정보가 잘못되었을 때는 수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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