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 로열과 그 회랑(Galleries)
프랑스 노르망디의 루앙(Rouen)에 가기 위해 파리 시내 숙소 앞에서 대절한 미니버스를 타고 두 시간 넘게 달렸다. 이날은 루앙대학교와 소설 <마담 보바리>의 배경지 리(Ry) 마을과 플로베르 박물관을 갔다.
루앙에 도착해서 루앙 대성당과 구 시가지를 탐방한 후 플로베르 박물관에 가기 전에 루앙 대학교를 방문했다. 학교는 방학중이라 우리나라 대학과는 달리 거의 모든 건물의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이 학교는 노르망디 출신인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가 (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자전적 글쓰기의 출발점인 현대문학과에서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꿈을 키웠고, 청춘의 고뇌가 서린 곳이라 할 수 있다. 문학기행 중 아니 에르노의 <사건>의 작품 배경지도 탐방 계획에 들어있기에 에르노의 발자취도 따라가 보기 위해 루앙대학에 들렸다. 루앙대학교는 그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며( 에르노의 산바카라길)도 조성해 두었다. 일행은 그 길을 걸어보며 에르노의 청춘이 짙게 스며있을 것 같은 교정 밴치에서 점심으로 준비해 간 바케트 샌드위치를 먹었다. 작가가 공부했던 교실엔 가보지 못했지만 학교 외관만 보고도 왠지 작가의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지는 듯했다.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학교 뜰에서 점심을 먹고 교정을 나섰다.
플로베르 박물관은 붉은 벽돌담에 나무 대문이었고 대문 윗부분에 파란색의 Musée Flaubert 란 간판이 붙어있었다. 간판이 없었다면 그냥 보통의 여느 집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은 플로베르가 태어난 생가로 작가의 아버지가 일했던 시립병원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아버지가 의사였기에 병원 안에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질병과 죽음, 아버지가 해부하는 모습, 환자의 고통 등을 가까이서 보고 자랐다. 이 환경이 훗날 작가가 작품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인간을 관찰하며 차갑고 정밀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위 문체를 확립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박물관 안은 껍질을 벗긴 해부학적 인체모형과 여러 가지 수술기구들 구리색의 긴 원통들이 진열되어 있고 출산의 모습을 본뜬 모형, 외과 수술실인 듯한 공간도 보였다. 수술에 필요한 의학메모였는지 작가의 원고였는지, 알 수 없는 수없이 줄 그으진 내용들로 가득한 노트들이 모빌처럼 공간 여기저기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의외인 것은 동남아에서 온 듯한 좌대에 앉은 불상이었다. 불상의 미소가 자애롭고 인상 깊어서 구글 번역을 해보니 1904년 오귀스트 우죠 기증, 18세기 금박을 입힌 쌀 종이죽으로 만든 불상이라고 해석해 준다. 부처의 마음이란 자비가 아닌가, 감정을 배제하고 인간을 관찰했다고 하는 플로베르는 선택이나 결정의 어려움이 생기면 부처님의 마음을 바탕에 두었을까 하는 객쩍은 생각을 잠시해 보았다.
박물관을 보고 나서 《Madame Bovary》에 등장하는 의사 샤를 보바리의 의료 장면들이 작가의 이러한 경험이 녹아 있었다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마담 보바리》의 주 무대인 용빌(Yonville-l'Abbaye)의 실제 모델이라는 리(Ry) 마을이 궁금했다.
《마담 보바리》는 리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실제 사건인 들라마르 부인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했다고 한다. 이곳의 의사였던 '베로니크 들라마르'의 두 번째 아내 '델핀 들라마르(Delphine Delamare)'가 사치와 외도에 시달리다 1848년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플로베르의 아버지가 이 의사의 스승이었기에 플로베르는 이 비극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모티브로 삼아 '에마 보바리'라는 불멸의 캐릭터가 태어났다.
리(Ry) 마을은 아직도 호젓한 소도시를 연상시켰고 소설 속 용빌 마을과 풍경이 겹쳐졌다. 도로 양쪽으로 작품 속의 모델 오메 약국도 있고 보바리네 집 (들라마르의 집) 병원자리도 그대로 있었다. 에마가 정부인 레옹을 만나기 위해 마차를 타던, 루앙으로 가는 마차길도 남아있었다. 작은 카페와 옷가게., 액세서리 가게등도 시대를 거스르지 않고 그냥 작품 속에 있는듯했다.
직선으로 보이는 오백여 미터는 됨직한 도로 끝에는 작품 속에 나왔던 관공서, 세무서였다는 건물이 그대로 있었고 그 끝점에 암석으로 만든 듯한 하얀색의 플로베르 동상이 있었다. 모두들 대 문호의 동상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을 마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남아있는 소설의 모델이 되었던 '델핀 들라마르(Delphine Delamare)의 가족묘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녀는 리 마을 언덕 위 조그마 한 성당 뜰에 낡고 오래된 비석으로 우리를 반겼다. 시대의 오만 앞에서 여성의 자유를 분방하게 표현하며 살다 간 그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가슴을 헤집었다.
리 마을은 고즈넉하고 평화롭고 단조로워 보였다. 누구에겐 더없는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또 누구에겐 가슴을 조여 오는 무거운 현실의 답답 함과 권태로움이 바스락 거리며 말라갈 수도 있는 건조한 곳일 수도 있었던 곳이다. 그녀를 평범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낭만을 꿈꾸다가 파멸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그녀가 리 마을이 아닌 파리 시내에서 태어나고 성격이 다른 (레옹같은 아니면 또 다른) 남자와 결혼했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의 삶이 환상과 욕망의 충돌이라 말하는 삶이 되었을까?
작가는 19세기에 현실과 환상의 충돌, 욕망과 결핍, 행복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갈망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글로 나타내고 싶었을까.
우리는 다음날 19세기 초, 중기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쇼핑가이자 유흥의 중심지로 알려진 팔레 로열과 그 회랑(Galleries) 및 정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곳이 소설 속 마담 보바리가 낭만적 환상과 사치를 꿈꾸던 장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끝내 도달하지 못한 파리의 화려한 삶, 그리고 그녀를 파멸로 이끈 낭만주의적 환상과 물욕을 대표하는 그녀가 처음부터 이 상류 슬롯에 태어나고 속해 있었다면 환상과 욕망의 충돌이 아닌 귀족 부인으로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살았을 삶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 속에서 엠마가 동경하고, 레옹을 만나 밀회를 즐기던 이곳은 플로베르가 청년 시절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문학 활동을 할 당시, 팔레 로얄 주변의 유명 카페나 레스토랑(예: Le Grand Véfour)에서 당대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모이던 중심지였다고 한다. 팔레 로얄과 그 회랑(Galleries) 및 정원 주변에는 고급 의상실, 보석상, 카페, 서점 등이 밀집해 있어 사치와 낭만,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엠마가 파리의 패션 잡지를 주문해 읽으며 사교계 여인들의 삶을 꿈꾸고, 나중에 비열한 뢰르(Lheureux)의 상술에 넘어가 빚을 지며 고급 비단, 장식품, 장신구 등을 끊임없이 사들이는 상징적인 배경이 바로 팔레 로얄로 19세기 파리의 소비 문화의 배경이였다는 설명을 들으며 비록 욕망이라 표현하지만 어쩜 19세기 보통 여자들도 해보고 싶은 유혹을 엠마는 실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녀 편이 되어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 움찔거렸다.
그날 우리도 레스토랑( Le Grand Véfour)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 시대를 흉내 내보고 다음 장소로 기행에 나섰다.
보름의 여행 속에서 만난 작가들의 탄생지와 박물관, 작품의 배경지를 간결 명료하게 기록하고 느낌을 약간 첨부하고 싶은데 오류를 범할까 몹시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