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

by바카라갈피


수술실 대기실에 앉았을 때까지가 내 기억의 끝이다. 그 이후에는 한 조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술하고 3주 뒤에 내가 깨어났을 때 흩어진 조각조각처럼 기억이 난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끔찍했던 시간을 기억 못 하는 내가 차라리 다행이다고 얘기했다. 똑같은 병실에서 똑같은 천장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지겨울까 하며 걱정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기억은 한 조각도 없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나는 남편의 말로는 큰 충격을 받아서 의식적으로 기억을 지운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3주간 의식 불명 상태에 있을 때 많은 꿈을 꾸었다. 국문학과 과사에서 조교랑 얘기하고 논문을 쓰고 남편과 얘기하던 꿈도 꿨다. 공통적으로 그 많은 꿈들은 별로 좋은 꿈은 아니었다. 어떤 꿈은 울고, 어떤 꿈은 비 오듯 땀 흘리고 어떤 꿈은 비명을 지르면서 깼다. 그 꿈들이 현실과 만나서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그 조각들에 내 영혼이 닥친다. 기억은 의식적으로 줄 수도 있나 보다. 나는 지금 후유증으로 운동신경이 망가졌다. 인지는 정상이다. 그래서 재활 시간에도 언어치료와 인지치료는 받지 않았다. 꿈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인 듯 아닌 듯 내 기억 속에 있다. 크나큰 아픔은 기억 속에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행복한 순간만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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