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병원에 있기 싫어

by바카라갈피


서울종합병원에서 퇴원할 무렵 남편은 회복기 6개월은 앞으로 재활병원에 더 있어야 한다며 대전에 있는 재활병원을 가자고 했다. 나는 그 무렵 서울종합병원에서 이미 3개월을 지낸 터라 내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사정해도 단호하게 남편은 재활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라면 하나 못 끓이는 이 상태로 집에 가면 아이들이 힘들 거라고 남동생도 그랬다. 그땐 그 말이 너무 섭섭했지만 맘 단단히 먹고 재활병원에서 6개월만 버텨보기로 했다. 나는 그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산산이 무너진 상태라 울면서 남편한테 부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보살피면 안 되냐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 협박했다. 그 말에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났다. 내가 식물인간이 되면 그때는 온라인 게임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전에 내려와서 재활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잠깐 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4개월 만에 다시 온 내 집은 그대로였다. 나만 변했지.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재활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가기 싫다는 말에 남편은 갈등하는 눈빛으로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리고 나를 병원에 두고 갔다. 그 뒤로 석 달간은 병원에 적응 못해서 매일매일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힘들다는 내 말에 남편은 강릉에 있어서 대신 대전에 있는 큰아들을 보냈다. 큰아들은 아침, 저녁으로 엄마를 찾아왔고 큰아들과 작은 아들을 앞에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예고할 때 두 아들은 소리 없이 울었다. 제발 재활병원에서 조금만 버텨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는 재활병원에서 6개월간을 버텼다.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그런 결정 한건 힘들었만 최상의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했지만,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환자가 무너질 때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 그 사람이 남편이었다. 남편의 그 결정으로 인해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조금은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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