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안에서 순환하는 운명의 시간
"많은 해가 지난 뒤, 총살형 집행대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을 구경하러 갔던 그 먼 옛날의 어느 오후를 떠올렸다."
《백 년의 고독》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이 시간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보여준다. 작가는 먼저 총살형 직전이라는 '미래의 시간'을 보여준 다음, 곧바로 인물이 어릴 적 얼음을 보았던 '과거의 시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과거의 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마르케스는 이 소설의 시간이 달력처럼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소설의 무대인 마콘도는 밀림 속에 세워진, 바깥세상과 완전히 떨어진 마을이다. 작가는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의 연대를 숫자로 적지 않는다. 대신 '정복자들이 오기 전', '바나나 회사가 들어오기 전'처럼 구체적인 사건을 기준으로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숫자로 된 시계가 없는 이 마을에서, 시간은 인물들이 직접 반복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측정된다. 1대 아우렐리아노 대령은 골방에서 만든 금물고기가 25개가 되었을 때 그만큼의 세월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 우르술라는 아이들이 기둥에 키를 재며 그어놓은 칼자국과 벽에 덧칠된 페인트의 두께로 세월을 확인한다. 인물들에게 시간은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의 변화와 되풀이되는 노동의 양으로만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시간의 흐름을 가장 낯설게 만드는 것은 같은 이름과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6대에 걸쳐 등장하는 남자들의 이름은 전부 '호세 아르카디오' 아니면 '아우렐리아노'다. 작가는 이름만 같게 쓴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따라 인물이 살아가는 방식까지 그대로 고정해 놓았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받은 인물들은 예외 없이 방 안에 홀로 들어앉아 금세공 일을 하거나, 뚜렷한 명분 없는 전쟁에 나가 수십 년을 보낸 뒤 다시 그 골방으로 돌아와 홀로 늙어간다. 반면 '호세 아르카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들은 힘과 체력을 앞세워 무모한 사업에 뛰어들고, 폭력적인 사건을 일으키며 바깥세상으로 날뛰다가 일찍 죽는다.
이름에 갇힌 인물들은 앞선 세대가 살았던 시간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1대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골방에서 금으로 물고기를 만들다 부수기를 반복하며 세월을 보냈듯, 4대 아우렐리아노 역시 같은 방에서 똑같이 금물고기를 만들며 평생을 보낸다. 가문의 최고령자 우르술라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후손들을 보며 이렇게 탄식한다.
"나는 이 말을 잘 알고 있다. 마치 시간이 제자리를 돌고 있고,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이 탄식은 마콘도의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대가 바뀌고 달력은 넘어가지만, 인물들이 살아내는 삶의 내용이 똑같기 때문에 시간은 사실상 멈춰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마을에 찾아온 '불면증 역병'은 시간이 멈췄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잠을 자지 못하게 된 마을 사람들은 수면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잃어버리면서 사물의 이름과 지난 기억을 하나씩 잊는다. 사람들은 암소 이마에 '이것은 소다. 아침마다 우유를 짜야 한다'라고 써 붙이고, 의자에는 '이것은 의자다. 앉는 데 쓴다'라고 적어둔다. 마을 입구에는 '하나님은 존재한다'라는 간판을 세운다.
오늘 한 일을 잊어버리니 어제와 오늘을 구분할 수 없고,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 앞일을 계획할 수도 없다. 잠과 기억을 잃은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과거도 미래도 없이 그저 이어지기만 하는 시간뿐이다. 마르케스는 사물에 글씨를 써 붙이는 이 장면을 통해,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굳어버린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콘도에 미국 바나나 회사가 들어서면서 마을에는 자본과 기계가 밀려들고, 시곗바늘은 빠르게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일으키자, 군대는 광장에 모인 3천 명이 넘는 주민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시신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 학살에서 살아남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마을로 돌아와 3천 명이 죽었다고 말하지만, 정부는 그런 학살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발표한다.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도 "마콘도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바나나 회사는 잘 운영되고 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사건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3천 명이 죽은 명백한 사건이 수수께끼처럼 지워지면서, 마콘도의 시간은 이 비극을 기록하지 못한 채 다시 텅 빈 상태로 돌아간다. 마르케스는 이 사건을 통해, 참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공동체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비극이 터지기 직전의 상태로 계속 되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시간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마지막 장에서 아우렐리아노가 집시 멜키아데스가 남긴 양피지 문서를 해독할 때다. 그 양피지에는 부엔디아 가문이 백 년 동안 겪을 모든 사건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미 다 적혀 있었다. 마르케스는 이때 인물이 마주한 진실을 원작에서 이렇게 적었다.
'멜키아데스는 모든 사건을 인간의 일상적인 시간 순서대로 놓지 않고, 백 년 동안의 집안 일을 한순간에 함께 존재하도록 한데 모아놓았다.'
이 문장은 소설 첫머리에서 대령이 총살당하기 직전에 어릴 적 얼음을 보았던 일을 떠올린 이유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대령의 어린 시절과 총살형, 그리고 가문의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시간이 이 양피지 안에 '이미 한꺼번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백 년이라는 세월은 인물들이 하루하루 새로 만들어간 시간이 아니라, 이미 다 정해진 과거와 미래를 순서대로 하나씩 확인해 나간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가문의 조상 우르술라가 평생을 바쳐 막으려 했던 일, 곧 근친상간으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도 결국 이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 일을 전혀 알지 못했던 후손들은 이모와 조카 사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정말로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는다.
아버지가 골방에 갇혀 양피지의 문장을 해독하는 동안,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된 갓난아이는 개미떼에게 끌려가 산 채로 먹혀버린다. 아우렐리아노는 아이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양피지의 다음 문장을 읽는다. 거기에는 '가문의 첫 번째 사람은 나무에 묶여 있고, 마지막 사람은 개미에게 먹히고 있다'라고 정확히 적혀 있었다. 자신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이미 다른 사람이 써놓은 문장에 불과했다는 깨달음은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는다. 자기가 언제 죽는지 확인하려고 양피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마콘도 마을 전체가 거대한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산산조각 나기 때문이다. 양피지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이 양피지에 적힌 일은 처음부터 다시 일어날 수 없으니, 백 년 동안 고독하게 살아온 가문은 세상에서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 년의 고독》은 시간에 쫓기면서도 그 시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한 가문의 끝을 다룬 소설이다. 인물들은 저마다 자기 시간을 살아간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멜키아데스가 이미 정해놓은 백 년이라는 시간 안에 갇혀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을 뿐이다. 마르케스는 이 정교한 구조를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기억하지 않는 삶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