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한 번째 편지(2021.3.2)·블로그(2.17~3.2)
뒷골이 묵직합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눈이 뻑뻑합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습니다. 제 안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방해를 받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런 경우 대개는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로 잠시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흐름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한 곳으로 과도하게 쏠려있던 에너지가 몸 전체로 고르게 퍼져나가면서 눈꼬리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면 급한 불은 끈 셈이 됩니다. 온몸으로 나른한 평화가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응급처방이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응급처방을 넘어 경험으로 체득한 모든 처방을 다 동원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 말입니다. 그야말로 대바카라이 없습니다. 대개 그 대바카라 없음에 대한 무력감까지 더해지면서 몸과 마음의 상태는 급속하게 악화됩니다. 어떻게든 빠져나와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너무나 피곤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날이 거듭되다 보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제 몸의 주인이 됩니다. 그때부터는 본능처럼 남아있는 그래도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서로 몸을 차지하고자 치르는 사투에 이미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제 삶의 시간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패턴 중의 하나입니다. 이 파괴적인 패턴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러니까 퇴직하고 집으로 돌아와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았을 때 홀연히 어떤 감각 하나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남은 생은 이 패턴을 끊어내는데 다 바치게 되겠구나.
이 자각에 이르고 나자 그때까지 저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던 ‘꿈’이란 것이 그야말로 허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그 시간까지 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분이라고 여겼던 ‘위대하고 훌륭해져서 온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꿈’을 비워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잃으면 죽을 줄만 알았던, 그래서 그렇게나 힘들어하면서도 집요하게 붙들고 있었던 ‘꿈’이 빠져나간 삶은 한결 가벼워졌고, 그 빈자리를 당시만 해도 하나도 안 위대하고 별로 안 훌륭해 보이던, 지금 여기의 저를 돌보는 요가와 살림으로 채워나갔습니다.
덕분에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로 나를 살리는 힘은 꿈이 아니라 요가와 살림인 건가?' 조심스럽게 가정하면서요. 그렇게 삶은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가는 듯했습니다. 드디어 저를 괴롭히던 그 지긋지긋한 패턴에서 영원히 벗어났나 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확신을 갖기 시작할 무렵인 작년 여름, 삶으로부터 또 한 번 보란 듯이 내동댕이쳐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꿈마저 포기하고 있는 힘껏 한참을 달려와 그 무시무시한 패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바로 그 패턴의 한 복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이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저는 어쩌란 말인가요? 누구라도 붙들고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제게 왜 이러는 거냐고? 그러나 대답이 있을 리 없었고,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힘까지 다 쓰고 나자 전혀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더 작고, 더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요. 그리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풀었다고 믿었던 그 패턴의 구조와 원리를, 그리고 제 인식의 치명적인 오류를요.
저는 여전히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만능열쇠를 찾고 있었습니다. 한번 만들어두면 그다음부터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만능열쇠. 그것이 한동안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믿는 어떤 것(부, 명예 등)이었다가, 저만의 고유한 길이라고 믿는 어떤 것(꿈, 소명 등)이었다가, 지금 여기서 제 몸과 일상을 살리는 그 어떤 것(요가, 살림 등)으로 변했지만 본질은 같았습니다. 저는 그 어떤 혼란에서도 저를 든든히 지켜줄 만고불변의 정답을 찾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고단하면서도 흥미롭다가 정답을 찾았다고 믿는 순간 어김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색을 중단하는 순간 흐름이 꼬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한 곳으로 에너지가 쏠린다는 것은 그것만이 정답이라는 단정에서, 다른 감각에 골고루 써야 할 에너지를 거둬들인 데서 오는 불균형이었음을 이해하게 된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쓸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열어두게 마련이기 때문에 고단하지만 나름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가 거듭될수록 모색의 기준이 타인의 욕망에서 저 자신의 욕망으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제 몸의 정직한 욕구로 점점 구체화되어 가는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몸으로 체감하는 삶의 질을 점점 나아지게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진실에 대한 지속적인 모색, 즉 ‘깨어있음’이야말로 파괴적인 패턴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 고단한 수련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냐고?
끝도 없이 이런 고단함이 지속되는 거라면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그리 열심히 수련하는 거냐고?
현재 상황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수련 자체가 목적이며, 수련의 현장 자체가 제가 바라는 유일한 것이라고요. 생명이 남아 있는 한 삶은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끊임없이 과제와 현장을 제공할 것이므로 저는 이미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룬 셈입니다. 이토록 넘치는 축복으로 저를 응원하는 삶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득 어쩌면 바로 이 느낌이 아모르파티, 제 운명(제 패턴)을 사랑하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웃습니다.
숨을 따라 온몸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빛알갱이가 퍼져나갑니다.
떨리는 첫 경험 (2021.2.17)
1. 늑대의 눈매가 마음에 들어 차마 비우지 못했던 누굴누굴 미니카펫. 딸내미가 마지막으로 내준 강아지 인형
2. 작가의 허락하에 작품 전체 비움
1. 첫 줌인요가, 수업 후 그녀들의 평화로운 표정에 감사
2.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고도 밤줌인요가 수업에 싱그러운 에너지를 내준 내 몸에게 감사
3. 줌수업을 응원해 준 식구들에게 감사
4. 호흡 수련 중 오래 붙들고 있던 화두를 풀 수 있는 통찰을 얻음에 감사
5. 4만 원에 세팅파마를 할 수 있는 동네 미용실을 찾은 나에게 감사
매 순간을 새롭게, 윤아인의 모차르트 연주처럼! (2021.2.18)
1. 아이 교복
2. 어느새 또 쌓인 바카라장 잡동사니들
1. 보석 같은 피아니스트 윤아인의 연주와, 연주보다 더 아름다운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손님맞이 집청소를 하는 시간을 허락하신 신께 감사
2. 본격적으로 문을 연 홈인요가. 찾아와 준 친구들과 몸의 지혜를 체험하고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에 감사
3. 오랜 친구의 사랑스러운 손 편지에 깊이 감동~♡
4. 엄마랑 하는 산바카라시간을 너무나 좋아해 주는 딸내미덕에 오늘은 소나무 잎 사이로 보이는 초승달을 만날 수 있어 감사
사진에는 반달이네. 분명 초승달이었는데~^^;;
4. 삶이 아름답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
스승의 은혜 (2021.2.19)
1. 다 쓴 샴푸, 클렌징 케이스. 확인한 카드명세표
1. 원장님께서 여수에서 사다 주신 동백 오일로 만든 아난다빵이 완전 맛있었다. 아가야들이랑 맛있게 먹고 원장님께도 드릴 수 있어서 감사
2. 안내자의 의도를 200 퍼 소화해 준 총명한 회원님들께 감사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