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편지(2021.2.2)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이때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허우적거리는 행동을 멈추고 마치 늪을 끌어안듯이 엎드려서, 가능한 수평으로 최대한 넓게 몸을 늪에 밀착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천천히 낮은 포복을 하듯 기어 나옵니다.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믿는 무가치감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도 유사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속으로는 자기를 무가치하다고 여기면서도 겉으로는 자기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무가치감을 자기와 동일시하면서 삶을 체념하는 방식으로는 무가치함의 늪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저항하든 체념하든 결과는 같기 때문입니다. 무가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늪에서 빠져나올 때처럼 먼저 무가치감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멈춰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무가치감과 친해질 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립니다. 여기서 ‘친해진다’는 것은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부정해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이루는 한 부분인 무가치감의 연구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끔찍해서 도망치고만 싶은 그 느낌은 몸의 어떤 부분에서 어떤 양상으로 일어나는지, 주로 어떤 순간에 활성화되고 약화되는지 등을 마치 무가치감이라는 늪의 생태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라도 된 듯 정성스레 살피고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빠져있는 이 수렁이 그리 끔찍한 곳이 아님을 눈치 채게 됩니다.
비로소 먹어도 먹어도 만족을 모르는 아귀처럼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던 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벗어나고만 싶던 어둠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 다시 말해 저 자신과의 관계 회복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관계회복을 위해 거창한 치유의 과정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어둠이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어둠의 소리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숨의 결과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